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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문자로 된 리듬 … 심장박동 그 자체죠

중앙일보 2014.08.25 01:24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제니의 시 세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성’이다.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의미를 유보하는 과정 자체를 가지고 자기 시를 만드는 시인이다. 그래서 리듬이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사진작가 이에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시-이제니 '왜냐하면 …' 외 12편



매일 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 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믿을 수 없게도 모두 함께 시를 쓰고 있었다/저마다의 낱말 속에서 저마다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이 방에서 저 방으로/이 종이에서 저 종이로.’



 이제니(42) 시인은 ‘몸소 아름다운 층위로’란 시의 마지막 두 연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16연의 장시는 등단 7년차 이제니의 ‘시의 여정’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는 도처에서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집요하게 지켜보는 시인의 눈이 있다.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2010) 이후에 사물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한 시를 쓰고 싶었어요. 편견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적인 맨 모습,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받아적고 싶었죠. 그 사물을 가리키는 낱말을 통해 사물의 내부로 들어간다고 할까요. 나와 사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거리를 밝혀보고 싶었어요.”



 사물을 꿰뚫어 보는 작업은 과연 가능할까. 시인은 글쓰기에만 집중하고자 10여 년 전부터 거제도에서 살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거제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그는 익숙하지만 낯선 섬마을의 풍광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몇 년간 사물에 대해 적어 내려가며 그가 새삼 깨달은 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대상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보기의 시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는 그렇게 쓰였다.



 “올 봄에 때를 놓쳐 꽃 피는 걸 못 봤어요. 그게 왠지 쓸쓸하고 슬프더라고요. 그날 일기에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라고 썼어요.(웃음) 서로가 서로에게 미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프고 슬픈 거죠. 하지만 서로 무관한 것들에게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것일 테니까 마냥 아프고 슬픈 것만도 아닌 거에요. 그런 시간을 거쳐 어쩌면 이제야 겨우 서로의 곁에 놓여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영영 모르기 때문에, 이제니는 계속해서 헤맨다. 그런데 지도도 없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모험이 순탄할 리 없다. 시인은 자주 머뭇거리고, 자주 번복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확정적인 진술이 아닌,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수정하고 부정하면서 어떤 노이즈와도 같은 목소리, 혹은 얼룩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사이에서 이제니만의 리듬이 탄생한다. 그의 시는 낭송했을 때 더 아름답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처럼.



 “시는 ‘문자로 된 리듬’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 때의 리듬은 단순히 어떤 단어나 문장의 규칙적인 반복을 통한 건 아니에요. 시인 특유의 언어 운용 방식, 혹은 심장 박동 그 자체인 거죠. 리듬을 일부러 의식하진 않아요. 제 속의 호흡이 조화롭게 흘러가기를 기다리면서 써나가고 있습니다.”



김효은 기자



◆이제니=1972년 부산 출생.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페루’로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편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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