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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중앙일보 2014.08.25 00:48 종합 33면 지면보기
한비야
유엔 자문위원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2005년 파키스탄 지진 긴급구호를 다녀온 직후였다. 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모금 방송에 출연해 이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 밤중에 순식간에 몇 억원이 걷히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러나 전화가 한꺼번에 쏟아져 다음 날 아침, 받아 놓았던 전화번호로 다시 연락해야 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마음 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기 후원이 일시 후원으로, 만원이 몇 천원으로, 아예 후원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우리가 방송 중에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동정을 베푼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어도 밤사이에 마음이 변했을까? 재난민을 돕는 일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마땅히 그리고 기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말이다.



 “세계시민의식이 관건인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알려야 하나?”



 그때 우리 단체에는 이런 일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었다. 안타까웠다. 마음 맞는 팀장들과 틈만 나면 머리를 맞댔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몇 달간을 집중적으로 이 생각만 해서일까, 급기야 이런 엉뚱한 꿈까지 꾸게 되었다.



 허름한 담에 난 쥐구멍 앞에 늘 하던 일인 양 밥을 놓고 뒤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그 구멍에서 하얀 연기가 밀려 나오더니 삽시간에 그 연기가 집채만 한 크기의 쥐로 변하는 게 아닌가? 하얀 양복에 까만 나비넥타이를 맨 깔끔한 정장 차림인데 몸은 사람이고 얼굴은 미키 마우스처럼 귀여웠다. 그 쥐가 내게 공손히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깜짝 놀라 얼떨결에 그 쥐의 어깨를 쳤더니 일순간 그 쥐가 수십 마리의 작은 쥐로 분신했다. 또 얼떨결에 작은 쥐 중 한 마리를 건드렸더니 다시 분신하면서 수천 마리로 늘었다. 다음 순간, 그 많은 쥐들이 나를 겹겹이 에워싸더니 일제히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꿈속이지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팀장들에게 말했더니 영락없는 태몽이라고 해서 한참 웃었지만, 이 꿈이 내 사회적 유전자를 나누어 줄 사회적 아들딸들이 수없이 생길 길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돕는다던가, 놀랍게도 꿈꾼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어느 대기업으로부터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 광고료는 1억원. 그 돈이면 꿈에 그리던 세계시민학교를 시작은 해볼 수 있었다. 상업 광고는 절대 안 한다는 내 원칙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고 받은 그 돈을 종잣돈으로 월드비전 안에 세계시민교육 전담 부서와 ‘지도 밖 행군단’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2007년 여름, 첫 졸업생 50명을 배출하게 되었다. 야호!!!



 그렇게 시작한 세계시민학교는 지난 8년간 무럭무럭 자라서 2014년 8월 현재, 560여 명의 강사와 20여 명의 직원이 똘똘 뭉쳐 한 해에 무려 36여만 명에게 세계시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재작년 교육부와 교육기부 MOU를 맺은 후부터 일선 현장에서 세계시민교육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한 해에 100만 명을 교육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참으로 신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2012년부터 아예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나섰다. 우리 학교는 건물도, 교복도 없고 이 일은 순전한 재능기부이기 때문에 나는 월급도 사무실도 없다. 그러나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을 모두 세계시민으로 만드는 게 소원이자 목표인,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멋진 학교라고 자부한다.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일 중요한 과목은 ‘우리의 범위 넓히기’다. 이제까지의 ‘우리’가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지역, 우리나라였다면 이제부터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까지로 그 무대와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를 서로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된 집, 지구집이라고 부르며 70억 인구는 이 집에 사는 ‘한 가족’이므로 서로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우리 집’의 문제인 빈곤과 인권, 환경, 평화 문제 등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자고 가르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즐기면서도, 그 축구공을 만드느라 학교도 못 가고 손톱이 으스러져라 일하는 파키스탄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거다.



 솔직히 말해 세계시민학교 교장 일은 업무량이 과중하고 시간도 무한정 든다. 처음 가는 길이라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일에 내가 가진 재능과 시간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결심이다. 머릿속에는 세계를, 가슴에는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두 손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잘 아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을 베이스캠프로 그러나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은가?



 2007년의 그 쥐 꿈은 정녕 길몽 중의 길몽이었다.



한비야 유엔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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