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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세월호 민심이 싸늘하게 식고 있다

중앙일보 2014.08.25 00:43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야당의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세월호가 정치적 자산에서 정치적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의원들을 3그룹으로 구분했다. ①친노·비례대표=모든 의사일정 거부하고 유가족과 투쟁하자 ②수도권 재선·호남의원=박영선 비대위원장(이하 경칭 생략)을 바꾸고 재협상팀 구성하자 ③중진의원들=침묵하면서 달력만 본다. 그는 “그나마 올해는 추석연휴가 빨라서 다행”이라며 ‘전략적 냉각기’를 입에 올렸다. 야당에서조차 물밑에선 “세월호는 세월이 약”이란 말이 나온다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진통이 오래갈 듯싶다.



 가장 최근 세월호 민심은 21일의 여론조사다. 응답자의 45.8%가 ‘재협상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며 ‘유가족 뜻에 따라 재·재협상을 해야 한다(38.2%)’를 눌렀다. 7.3%포인트는 적은 차이가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균형추인 40대가 재협상안 지지로 돌아섰다. 응답자 53%가 ‘수사·기소권을 주자’던 지난 1일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세월호 민심이 싸늘하게 식었다. “문명사회의 근간인 자력구제(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 금지 원칙이 무너진다”는 새누리당의 논리가 먹혀 든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세월호의 정치화’다. 야당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세월호 심판’으로 변질시켰다. 우리 사회의 눈높이에선 사고 책임의 비중이 선장·선원>청해진해운·유병언>해경·정부 순이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은 ‘닥치고 박근혜’로 몰며 ‘청와대의 7시간’만 물고 늘어졌다. 보수진영은 유가족의 동선도 곱게 보지 않는다. 당연히 청해진해운·구원파 농장부터 몰려갔어야 했다. KBS→청와대→국회본관→광화문→다시 청와대 앞의 농성 코스는 ‘정치적 루트’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유가족은 갈수록 고립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총선에 민감한 야당 수도권 의원들부터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도 “재협상안을 수용하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또한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가족사가 인터넷에 불거지면서 뒷말이 꼬리를 문다. 이미 단원고 유가족 옆에는 광우병 사태 이후 지겹게 봐온 온갖 ‘대책회의’ 인물들이 어른거린다. 머지않아 깃발부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낯익은 풍경이 등장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큰 사건들은 으레 그렇게 지나갔다.



 유가족들이 다시 국민적 공감을 받으려면 시각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 야당에 ‘적과의 동침’이라 쏘아붙였듯이 ‘국가=적’으로 여기는 느낌이다. 눈을 돌려 터키에서 301명이 숨진 소마광산 참사와 비교해 보자. 당시 터키 총리는 “어디서나 일어나는 사고” “나한테 욕을 하면 맞는다”는 막말을 뱉었다. 그러고도 얼마 전 멀쩡하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잠수사·헬기조종사 등 10여 명의 희생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수색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도 힘을 보탰다. 터키에 비하면 우리가 결코 ‘수준 낮은’ 사회는 아니다.



 또 하나, 다른 법안은 몰라도 유족들이 국민기초생활법 개정의 족쇄는 풀어줘야 한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런 긴급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가 내놓은 제1호 법안이다. 그럼에도 하반기 집행분 2300억원이 세월호 특별법에 묶여 있다. 1인당 1000만원씩 긴급지원해도 갑자기 실직한 2만 명이 극단적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안전망이다. 세월호 희생자만큼 이들 사회적 약자의 생명도 소중하다.



 유가족들은 “국민이 있고 유가족이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라며 야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맨 앞에 꼽은 국민들의 분위기부터 착 가라앉았다. 상당수는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할 쪽은 대통령이 아니라 유가족이 아닌가, 라고 묻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한 번쯤 호흡을 가다듬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수색과정의 희생자들에게 각별한 조의부터 표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청해진해운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오늘도 유가족들은 대통령에게 매달리지만, 그 위에 국민이 있다. 세월호 특별법도 결국 민심이 결정한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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