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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86년 2월 6일 5면] '나인 하프 위크' vs '뽕'…누가 이겼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2014.08.25 00:14






























1986년 2월 설 시즌 극장가에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에로영화 2편이 개봉했다. 하나는 ‘뽕’(이두용 감독·1985) 이고 또 하나는 ‘나인하프 위크’(애드리안 라인 감독·1986)다.



나도향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뽕’은 단순히 ‘야한 영화’라는 이미지와 달리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미숙과 이대근이 주연했다. 성을 코믹 코드로 풀어 큰 호응을 얻어 아류 작품들이 뒤를 이었다. 이대근은 남자 배우로선 드물게 섹스 심벌 대접을 받았다. 1920년대 천하의 노름꾼을 남편으로 둔 탓에 남정네들에게 몸을 팔며 구차한 삶을 이어가는 이미숙과 그를 탐하는 머슴 이대근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나인 하프 위크’는 매력적인 이혼녀 엘리자베스와 섹시한 남자 존이 영화 제목처럼 9주 반 동안 벌이는 애정행각을 그린 영화다. CF 감독 출신 애드리안 라인의 세련된 영상미가 일품이다.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화제작이다. 1991년 국내 비디오 출시에서조차 과다 노출, 노골적인 성 행위 때문에 5분이 잘렸을 정도로 애정행각 수위가 높다.



1986년 2월 6일 중앙일보 5면에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광고가 쌍으로 편집돼 붙어 있다. ‘이제, 남녀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급하다 빨리보자’ ‘사랑하고부터 그 여자는 하루종일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나인 하프 위크)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어느날, 별안간 두메산골의 고요를 깨뜨리고 산불처럼 뜨거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뽕) 등 두 영화를 소개하는 자극적인 카피는 궁금증을 증폭시키다 못해 실소하게 만든다.



당시 ‘애무의 황제’로 손꼽히던 미키 루크에 비해 이대근식 저돌적 스타일이 초라해 보였을까? 결국 영화 흥행 성적은 ‘나인 하프 위크’의 우세승으로 끝난다. 13만7000명을 모은 ‘뽕’보다 ‘나인 하프 위크’를 찾은 관람객이 23만 5000명으로 10만명 가량 더 많았다.(영화진흥위원회 1986년 자료, 서울 관객 기준)



에로영화에도 ‘걸작’은 있는 법. 뽕을 가뿐하게 제친 나인하트 위크는 이후 많은 뮤직비디오와 CF, 패러디물로 재생산되며 회자됐다. 아직까지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에로틱한 영화’ ‘남자가 꼭 봐야할 영화’ 순위에 이름을 올리곤 한다. 개봉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치고는 꽤 큰 울림이 있는 셈이다.



‘나인 하프 위크’는 전형적인 뉴욕 여피족의 사랑이야기다. 고독한 두 남녀가 9주 반 동안 사랑을 불태우며 몸부림치는 얘기를 밀도 있게 그렸다. 두 남녀의 직업조차 ‘뉴욕적’이다. 존(미키 루크 분)은 월스트리트의 주식 브로커이고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 분)는 이혼한 독신녀이자 소호의 큐레이터다.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차이나타운이라는 이국적인 공간에서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만난 존에게 빠져든다. 몽환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첫눈에 상대의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마침내 연인이 된다.



그런데 둘의 사랑법은 좀 독특하다. 존은 킴 엘리자베스의 눈을 가린 채 음식물을 행위의 도구로 이용한다든지 마루 위를 기어가라면서 채찍을 휘두른다.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육체를 격하게 탐한다. 때론 소프트 SM(사도-마조히즘)적 사랑놀음을 즐긴다. 밖에선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함께 훔치거나 시비를 건 상대에게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둘은 일탈과 한계를 넘나들며 흥분과 전율을 함께 한다.



9주 반, 7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기존의 도덕이나 규칙, 이성을 무시하고 욕망이나 충동을 탐닉한다. 베일에 싸인 인물인 존은 육체적 게임만을 원한다.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과거나 개인사 따위엔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랑에 회의를 느낀 엘리자베스는 결국 혼자를 택한다. 일상과 삶을 거부한 관능과 사랑의 추구에 쓸쓸함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피로하고 건조한 도시의 거리에 다시 홀로 서있게 된다.



에로영화는 모름지기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장르로 치부되지만 ‘나인 하프 위크’는 좀 달랐다. 이 영화는 영상과 음악 그리고 편집에서 모두 당대 정상의 수준을 보여줬다. 미키 루크와 킴 베이싱어 역시 자신들의 매력을 1백 퍼센트 드러냈다. 당시 뉴욕타임즈지는 “베루도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탱고’가 70년대를 석권했다면 이 영화는 80년을 흥분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평했다. 에로영화 장르지만 현실세계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일들이 시종일관 펼쳐진다는 의미에서 ‘나인 하프 위크’는 아직까지도 판타지 혹은 대리만족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영혜 기자 sa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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