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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유용한 학문인가 … 석학과 젊은피 ‘열린 대화’

중앙선데이 2014.08.23 23:38 389호 4면 지면보기
5회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이 2007년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와 토론하고 있다.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서 강연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석학들이 무료로 젊은 후학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회의 첫날인 20일(현지시간) 강연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수상자는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였다. 2012년 ‘시장 설계’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스 교수는 ‘혐오적 시장(repugnant markets)’에 대해 유머를 섞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했다. 혐오적 시장이란 마약·신체 장기처럼 어떤 사람들은 거래를 원하는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시장을 말한다. 로스 교수는 실제 신장 거래를 주선하고 있다. 단 돈은 받지 않는다. 돈을 뺀 장기 시장을 설계한 것이다.

2014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 참관기

 로스 교수는 30여 분에 걸친 강연 말미에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신장 거래에 찬성하면 손을 들어보세요.”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로스 교수는 곧바로 “그럼 기증자가 죽게 되는 심장 거래는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손을 들었던 학생들이 황급히 손을 내렸다.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스 교수가 객석에 앉아있던 신자유주의 성향의 시카고대 소속인 라스 피터 핸슨 교수를 가리키며 “그래 시카고. 사람을 죽이자는 거래에 찬성해야지”라고 말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스 교수는 마지막 날 토론에서 경제학의 유용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경제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연구 환경이 변하고 도전 과제도 변하면서 경제학은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스킨 “리카르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됐지”
2007년 수상자인 하버드대 에릭 매스킨 교수는 경제학의 대표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반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상대우위 이론대로라면 세계화가 진행되고 무역 장벽이 사라지면서 개발도상국의 소득 격차, 불평등도 줄어야 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서민들은 여전히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스킨 교수는 노동시장을 ▶선진국의 숙련된 노동력 ▶선진국의 미숙련 노동력 ▶개발도상국의 숙련된 노동력 ▶개발도상국의 미숙련 노동력으로 나누었다. 세계화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개발도상국의 숙련된 노동력은 혜택을 보지만 미숙련 노동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스킨 교수는 “리카르도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며 “상대우위 이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는 미국 상황을 언급하며 경제학의 정파성에 대해 얘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물리학의 경우 민주당 물리학과 공화당 물리학이 따로 없다. 하지만 경제학은 민주당 성향과 공화당 성향이 나뉘며 객관적인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행사에 초청받은 손석준(서울대 대학원)씨는 “경제학 연구는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연구자가 끊임없이 연구를 유용하게 하려고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번 모임에 참가해 유로존 국가들이 어렵지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강연을 했다. 그는 ”유로존 18개국의 통화 연합을 운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지만 위기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많이 메웠다. 곧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로존 정책입안자들이 아직도 유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올바른 길을 간다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영 인사를 하는 조직위원장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 [Rolf Schultes/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유로의 구조적 문제 해법 못 찾아”
린다우 경제학 회의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s Meeting)’의 일부다. 이 행사는 1951년 린다우 출신 두 의사인 구스타프 파라데, 프란츠 카를 하인과 스웨덴 백작 렌나르트 베르나도테가 공동 창립했다. 베르나도테 백작은 1905년 제1회 노벨상을 시상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의 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하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60여 년간 생리의학·화학·물리학 수상자를 매년 교대로 초청해 행사를 했다. 2000년부터는 5년마다 한 차례씩 학제 간 교류 모임을 했다.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은 2004년부터 2~3년에 한 번씩 열려 올해가 다섯 번째다. 모임마다 15~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백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초청된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연을 하고, 젊은 연구자들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베르나도테 백작은 1989년 물러났다. 그 뒤를 부인인 소냐 베르나도테 백작 부인이 이었다. 2004년 백작과 백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딸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베르나도테 여백작은 환영사에서 학생들에게 “배우고, 영감 받고, 쌓으라”고 주문했다.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친다. 세계 각국의 주요 대학, 42개 중앙은행, 수상자 본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학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추천한다. 최종 명단은 린다우 회의가 결정한다. 올해 한국에선 한국은행이 박사급 소속 연구원 2명과 서울대와 연세대 대학원생 2명을 추천해 참석했다. 450여 명 가운데 대부분이 유럽 출신이다. 최근 중국 출신 학생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독일 최남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자리한 린다우는 보덴 호숫가에 있어 휴양지로 손꼽힌다. 인구 2만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할 정도로 아름다워 관광객을 모은다. 린다우 기차역 앞 광장 이름이 ‘알프레드 노벨 플라츠’다. 그만큼 노벨상으로 먹고사는 곳이다. 숙소는 이름은 호텔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모텔이나 펜션에 해당한다. 에어컨도 없다. 린다우 미팅도 마을회관 격인 인젤 할레에서 열렸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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