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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회 입법권 침해” … 유족 “수사·기소권 필수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4.08.23 23:50 389호 6면 지면보기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이 23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비닐을 덮은 채 노숙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지난 22일 병원으로 옮겨진 뒤 동조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비난 수위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세월호 정국] 꽉 막힌 ‘세월호특별법’ 무엇이 문제인가

23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참여하는 동조단식단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날 장애인·빈민단체 회원 100명도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동조단식에 참여하겠다는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배우 이정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이스 버킷 동영상을 올리면서 “루게릭병 환자뿐 아니라 사회 소외계층,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지지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조단식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생겼다. SNS에서는 ‘김영오씨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단식의 순수성에 의심이 간다’는 글이 유포되고 있다.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변희재씨도 트위터에 “유민 아빠란 자의 신분이 금속노조원이라면 당연히 지금의 비정상적 투쟁이 대한민국 정부를 엎으려는 친노 정치세력의 정략이라 의심할 만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곡해하는 게 더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라며 비판한다.

“청와대로 불러 진상규명 약속해놓고 …”
세월호특별법이 불신과 원칙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을 믿지 못한다. 단순한 불신으로 보기엔 쌓인 감정의 골이 깊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가족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나 세월호 사건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입법 태스크포스(TF) 활동이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어진 것도 불신의 벽을 높였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지난 7월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사고는 일종의 교통사고”라고 말했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달 초 황우여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단식을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가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고수하고 있는 ‘원칙론’도 특별법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 논란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 분립하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상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지난 20일 “세월호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국회의 고유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2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특별법은 법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온전히 국회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입법권 원칙’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율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팽배해 있다. 대책위가 특별법 TF 논의 과정에 가족들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친 원칙론의 고수가 불신의 벽을 높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대책위의 세월호특별법안에 참여했던 대한변협 박종운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들은 입법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지, 국회의원의 입법 권한을 침해하거나 의결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전문가들만 만드는 게 아니라 충분히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며 “일반법도 아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라면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리고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법을 둘러싼 오해도 증폭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에 대해 특정한 원칙을 정해놓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일부 언론에서 ‘대책위가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진상조사위 활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조금 다르다. 대책위 측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1차 합의했던 이달 초 이후 “대책위의 특별법안에 ‘버금가는’ 대안을 정치권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왔다. 입법TF에 대책위를 포함시켜 3자협의체를 구성해달라거나, 진상조사위 구성에 있어 국회 추천위원과 피해자 단체 추천위원을 동수로 해달라는 주장은 이미 철회한 상태다.

유족, “국회가 대안 내면 받아들일 것”
피해자 가족들은 왜 여야가 두 차례에 걸쳐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안에 반대하는 걸까. 그리고 이들이 요구하는 건 뭘까.

대책위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23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반드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요구에 ‘버금가는’ 대안만 마련된다면 국회의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한다는 건 물러설 수 없는 요구인가.
“이미 3주 전(여야의 특별법 1차 합의 시점)부터 가족들은 ‘대책위 안에 버금가는’이란 표현을 썼다. 이는 세 가지 원칙만 충족되면 된다는 의미다. 우선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는 권한이 발휘되는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진상조사위 활동과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그렇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사람 혹은 기구가 조사위 바깥, 예를 들어 특별검사의 형태로 있어도 된다는 의미인가.
“우리가 요구하는 원칙은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세 가지 구성요소만 갖춰진다면 다른 형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미 상설특검을 통한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에 합의했다. 여야가 특별검사 추천위원회 위원(7명)의 국회 몫 추천위원 4명 중 여당 추천위원 2명에 대해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기로 재합의하기도 했다.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뭔가.
“피해자 가족들이 특검을 직접 추천할 수 없다면 특검 추천위원 구성이라도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여당 몫 2명의 추천위원은 어쨌든 추천 주체가 여당이다. 여당은 계속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올리고 가족들이 계속 반대한다면 어쩔 건가. 여당 추천과 가족의 반대가 되풀이될 텐데.”

-정부 여당에도 세월호 사고의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특검 후보 추천 과정에서 여당을 죄인 취급하면서 무조건 배제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 아닌가.
“여당은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못 믿는다고 얘기하는데 여당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이런 주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보여준 행태가 어땠나. 세월호 사건이 교통사고와 뭐가 다르냐고 망언을 했고, 국정조사 증인 채택도 안 됐다. 여당이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이상한 사람을 (특검 후보로) 추천하겠냐’며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나. 가족들 내부에선 여당이 처음부터 믿음을 줬다면 수사권기소권 문제에 있어 기존 상설특검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입법 권한은 국회에 있는 것 아닌가.
“가족들이 법을 만들게 해달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 간여하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는 거다. 청와대는 국회에 떠넘기고, 여당은 야당에 ‘가족들을 설득하라’고 떠넘긴다. 여당은 특별법에 대해 빨간펜 들고 이건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기밖에 더 했나. 여당과 청와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일각선 갈등 부추겨 … 국민들 피로감
세월호특별법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진영논리나 이념 갈등처럼 곡해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진보와 보수 양측의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세월호특별법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갈등만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가족들도 이런 논란에 대해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병권 대책위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정치적 논란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국민들”이라며 “배후가 있다거나 무리한 배·보상을 요구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가족들은 하루도 쉬질 못했다. 특별법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건 오히려 우리 가족들”이라며 “많이 응원해주시고 함께 슬퍼해주신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빨리 해결해주지 못해 논란이 길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시간을 끌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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