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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타깃 된 선조 … '조선왕조실톡' 패러디 인기

중앙일보 2014.08.23 01:58 종합 9면 지면보기



신하 "명나라서 상 줄 장수 명단 달랍니다"
선조 "이순신 자잘한 공만 세웠지,주지 마"











신하: “명나라에서 임진왜란 때 잘 싸운 장수들 명단 달랍니다.”



“상 준다고요. 특히 이순신 장군.”



 선조 : “주지 마. 우리 애들이 뭘 잘했다고. 자잘한 공만 세웠지.”



 신하 : “근데 달라는데요. 꼭.”



 선조 : “적당히 얼버무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조선왕조실톡’의 ‘명량 그 이후 2- 선조의 대답’ 편이다. 조선왕조실톡이란 『조선왕조실록』을 카카오톡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 웹툰작가 ‘무적핑크’ 변지민(25)씨가 페이스북 등SNS에서 연재하는 작품이다.



연재 시작 한 달 만에 구독자 수가 3만6000명을 넘어서며 젊은 층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다. ‘선조의 대답’편은 선조가 이순신 장군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견제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카톡 대화창 화면 옆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온라인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선조 99권, 31년(1598 무술/명 만력 26년) 4월 14일(무진) 3번째 기사 - 이정구가 군공의 보고, 이순신의 포상, 축성 문제 등에 대해 아뢰다’가 링크돼 있어 국역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 부분이 명나라 관리가 “이순신이 그처럼 힘을 다해 적을 죽이고 있어 내가 매우 가상히 여기고 좋아하고 있다. 서둘러 권장하는 상을 내려 사기를 고무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니 선조가 “비록 사소한 적을 참획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변장(邊將)의 직분상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뿐 아직 하나의 적진을 섬멸하지도 못하였고 한 명의 적장도 참획한 일이 없으니 우리나라의 변장들로서는 당연히 죄를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무엇이 공로라고 대인 앞에 그 숫자를 올리겠는가”라고 기록돼 있다.



 작품을 위해 2년 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다는 변씨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순신에 대한 언급 자체가 많지 않더라”며 “선조뿐 아니라 신료 대부분이 이순신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변씨는 이순신 장군을 ‘일은 잘하지만 상사가 눈엣가시처럼 싫어하는 동료’에 비유했다. “상사 앞에서 그런 동료를 대놓고 칭찬할 수 없는 것처럼 선조가 얼마나 이순신을 견제하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신료들이 이순신에게 상을 주라고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죠.”



 영화 ‘명량’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선조를 ‘판단력 제로, 무능의 절정, 질투심 쩌는 최악의 임금’으로 묘사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순신, 유성룡, 이율곡, 권율, 곽재우 등 선조 때 인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정권자가 어처구니 없으니 나라가 저렇게 되더군요.”(***타님)



 “임진왜란 끝나고 공신들에게 주는 상을 자기 피란 갈 때 호위했던 사람들에게 줬다고 하더군요. 의병들은 다 무시하고 심지어 처벌까지 하고.”(***왕님)



 임진왜란을 예상하지 못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데다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한 임금. 게다가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궁지에 몰아넣은 선조를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선조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쓴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선조는 왕권의 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노회한 권력자였다”고 평가했다.



 “선조의 현실 감각은 뛰어났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피란을 결행했습니다. 결국 그 덕분에 조선의 왕을 무력으로 손에 넣어 일본의 제후국으로 삼으려 했던 일본의 시도가 무산됐고 조선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선조는 피란을 하면서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고 10여 명의 신하를 내준다. 광해군은 이때 공석인 아버지를 대신하며 새로운 구심점으로 자리 잡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선조가 피란을 함으로써 조선을 지킨 셈이 됐지만 백성을 버린 비겁한 왕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중시했다는 인상을 준다. 한 교수는 “백성들이 국왕이라고 하는 존재에게서 기대하는 군주의 상을 고려하면 책임감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국가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을 지키는 게 가장 큰 관심이었던 선조는 원균과 이순신을 지속적으로 경쟁시킴으로써 어느 한쪽의 세력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견제했다.



웹툰 작가 변지민씨. 스마트폰 화면은 변씨가 그린 이순신 캐릭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그린 박시백 화백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은 백전백승이었습니다. 그걸 보고 이순신 장군이 아니어도 조선 수군이 왜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잘못된 판단이었죠. 조선 수군의 승리는 이순신이라는 리더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걸 원균이 이끈 칠천량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에야 알았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칠천량 전투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이후 5년간 구축했던 160여 척의 판옥선, 3척의 거북선과 1만명 이상의 수군을 궤멸시켰다. ‘미안하다. 부탁한다’는 선조의 편지에 다시 전장으로 돌아온 이순신 장군 앞에 남아 있는 것은 12척의 판옥선이 전부였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도 선조는 냉담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선조는 1601년 왜란 중에 활약했던 공신(功臣)들을 선정하면서 이순신을 원훈(元勳·으뜸가는 공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인정했지만 원균·권율과 동등한 자리에 배치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보전된 것은 오로지 명군 덕분”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는 사실과 달랐다. 명군은 1593년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일본군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일본과의 강화협상에만 매달렸다.



박 화백은 “선조 때 유성룡·권율·이항복 등 인재가 많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것은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이었다”며 “가장 큰 공이 돌아가야 할 이들을 무시했던 것은 전쟁 영웅에 대한 질투심과 권력자로서의 견제가 발동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지켜냈다는 점에선 세속적인 의미의 능력자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23전 23승 이순신 … 혹시 외계인이 도운 걸까”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휘했던 전투의 전적입니다. 23전 23승, 승률 100%. 왜군 전사 8만7700명, 격파한 왜군 함선 수 1163척. 아군 52명 전사, 아군 함선 손실 0척.”(**뚜님)



 “으윽.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됩니다. 잠시 놀러온 외계인이 도와줬다거나… 도…도민준씨!? 도민준씨는 실존인물이었군요!”(****수님)



 “판타지나 무협소설도 아니고…. 이 정도면 그냥 신이네요.”(*커님)



 영화 ‘명량’이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경이적인 전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한 명량대첩은 물론이고 옥포해전, 당항포·초량목해전 등 수많은 전투가 사망자·부상자·함선의 손실 없이 끝나거나 미미한 수준의 피해에 그쳤다. 반면 왜군은 수백 명이 죽거나 다치고 수많은 함선이 격침됐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이 이어지자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신료들은 조선 수군의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자신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박시백 작가는 “실록에 따르면 당시 조정의 모든 신료는 조선 해군엔 잘 발달한 화포가 있고 튼튼한 판옥선이 있어 왜군과의 해전에서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 모든 승리는 우리 수군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했던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균의 칠천량 패배가 명백한 증거였다. 작고 날랜 왜군의 공격에 큰 판옥선·거북선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장수 배설이 칠천량에서 12척을 갖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조선 수군은 전멸되고 명량의 기적도 없을 뻔했다.



한 네티즌은 “명량의 전사자 숫자를 보니 왜군은 1800명이 넘게 사망했는데 조선군의 사망자는 2명뿐이었다”며 “너무 말이 안 되니 영화에서는 오히려 우리 측 전사자 수를 수십 명으로 늘려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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