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속으로] 삶의 질 확 달라진 반려동물

중앙일보 2014.08.23 01:49 종합 10면 지면보기



"멍멍아, 유치원 가자 … 배변수업 잘 받고 재밌게 놀다 와"
다섯 집 중 한 집서 키워 … 치유 필요한 시대 '반가운 가족'
순천 동물영화제, 5000명 몰려 성황
"사람과 사람 이어주는 역할 해요"











우리집 강아지 애완동물일까 반려동물일까



애완동물(pet)은 인간이 즐거움을 위해 사육하는 동물.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 같은 개와 고양이지만 부르는 말은 다릅니다. 어느 쪽이 당신의 개와 고양이에 어울리나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마음에 위로와 기쁨을 주는 존재라면요.



“사랑을 줍니다. 아낌없이요. 우리의 사랑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믿을 수 있고 꾸밈이 없으며 열정적이죠.”



 이토록 절절한 사랑의 주인공이 있을까.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 줄 사랑. 그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이다.



 직장맘 정미경(43·서울 서초동)씨는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반려동물은 준다”고 말했다. 3년 동안 키운 강아지 ‘쭈쭈’를 잃은 날 정씨 가족은 엉엉 울었다. 특히 중1이었던 딸은 하루종일 통곡을 하며 밥도 먹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엄마·아빠와 떨어져 자기 방에서 자는 걸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쭈쭈가 아이랑 같이 잤어요. 아마 아이로선 혼자 자는 게 아직 무서웠을 거예요. 쭈쭈가 엄마·아빠 대신 아이를 돌봐줬다고 봐야죠. 저도 회사 일이 늦을 때면 쭈쭈가 딸과 함께 있어서 안심이 됐어요.”



 작가 고영리씨는 책 『지오, 어쩌면 내게 거는 주문일거야』에서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반려견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씻기고 먹이고 살펴주니 돌본다는 개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녀석들 역시 나를 굉장히 세심한 시선으로 돌보고 있다. 녀석의 두 눈은 결코 우리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 귀는 항상 우리를 향해 쫑긋 열려 있고 옆에 붙어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때 개나 고양이를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유사시 ‘식량’ 대신으로 키우는 게 당연한 시절도 있었다. 목줄에 매여 평생 몇 발짝 떼지도 못 하고 살던 개는 여름 복더위를 채 나지 못 하고 보신탕집으로 팔려가는 일이 흔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남은 음식을 훔쳐 먹다가 어느 날 잡혀 약탕기에서 달여지는 신세가 되는 고양이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반려동물의 삶은 과거와는 다르다. 외로운 삶의 동반자, 허전한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가족이자 친구다. 귀갓길 지친 가장을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이며, 할아버지·할머니의 말동무이자 산책 파트너다.



 1인 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반려동물에 의지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체의 17%. 다섯 집 중 한 집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1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정원에서는 제2회 세계동물영화제가 열렸다. 전국 곳곳에 폭우가 내리고 순천 역시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이날 아침 궂은 날씨에 영화제 주최 측은 바짝 긴장했다. 반려동물과 가족들의 참석이 저조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개막식이 열린 오후 6시. 행사장은 개와 고양이를 데려온 5000여 명의 참석자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어머, 꼬리 봐. 정말 귀여워”



 “그 개는 종이 뭐예요?”



 서울과 대전·광주·여수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낯선 이들은 각자의 반려동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서울에서 온 반려동물사진 전문가(펫토그래퍼) 옵택핸즈(35)씨는 “국내에는 개들을 반겨주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가끔 외부에 산책하러 나가더라도 사람과 동물이 서로 경계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반갑게 웃고 인사하는 분위기만으로도 반려동물 가족들이 흡족해한다”고 말했다.



 영화제에는 20여 개국에서 만든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50여 편이 상영된다. ‘마음이’ ‘챔프’ 등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해 왔던 김민기 화인웍스 대표가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고양이와 개 3마리를 키우고 있는 그는 반려동물과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를 오랫동안 꿈꿔 왔다고 한다. “동물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20~30대 젊은 층이 많았다. 50대인 진순심(52)씨는 딸 김희원(24)씨와 같이 왔다. 그도 처음엔 딸이 데려온 강아지를 내치기만 했다. ‘개는 집안에 들이는 게 아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진씨는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딸처럼 예뻐해 주고 있다.



 “갑상선 수술을 받은 직후였는데 딸이 유기견을 집안으로 데려온 거예요. 딸이 나간 사이에 강아지를 쫓아내려고 대문 밖으로 ‘나가라’ 내보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예요. 보기가 안쓰러워서 ‘들어오라’고 했더니 팔딱 오데요. 지금은 정이 들어 개 취급을 안 해요.” 강아지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 역할을 했다. 진씨는 “제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만 보던 가족들도 강아지가 생기면서 마루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우기에 아직 한국은 그렇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딸 희원씨는 “아직까지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별로 없다”며 “동물들과 함께하기에 국내 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애견 동호회원과 함께 강아지들을 데려온 조계진(36)씨는 “일본에선 강아지를 키워야 입주가 가능한 실버타운도 있다”며 “반려동물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점차 고독해지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인 성격에 맞는 개를 키우면 생활에 더욱 활기가 붙는다고 조언한다. 온순한 사람은 차분하고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골든리트리버를, 활동적인 사람은 뛰어다니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콜리를 키우는 게 좋단다. 그는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동물들과 대화하게 되고, 또 산책하러 나가야 해서 몸을 움직이게 되며, 산책하러 나가면 같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돼 우울증이 생길 틈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버려지는 반려동물 수가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호회원들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졌다거나 반려동물이 병에 걸렸다고 해서 버려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에서 온 유영한(49)씨는 “휴가철이 지나면 해운대 바닷가 백사장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지나치게 비싼 동물병원의 치료비를 합리화하는 게 유기견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의 책임감도 중요하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불경기 때문에 돈이 없어 개를 버린다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개를 학대하거나 유기할 경우 처벌 수위를 높여 생명을 중시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동물보호활동을 펼쳐왔다.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동물의 복지나 권리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았다. “키우던 동물을 버리거나 학대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무리 동물을 학대해도 최고 벌금 20만원이면 됐죠”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꾸준한 법 개정으로 2013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벌금 1000만원 이하, 1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가 늘면서 유기견 구조 건수도 늘고 있으며 고속도로 등에서 야생동물을 차로 치는 로드킬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투견으로 개를 학대하는 일도 여전히 많다. 순천에서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이은주(28)씨는 “논 바닥에서 투견이 열린다고 해서 몰래 들어가 보니 온갖 외제차가 어떻게 그런 촌구석을 알고 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왔다”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투견 문화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이 작가로 알려진 이용한씨는 “한국은 고양이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주장한다. 그는 7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사진을 찍었다.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 제작과 시나리오에 참여했고, 고양이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썼다. 최근 세계 각지의 고양이를 찾아 다닌 여행 이야기를 묶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를 낸 그는 “인도에서 고양이는 학대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었고, 모로코와 터키에서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생활의 일부이자 신앙의 일부였다”고 전했다.



 반려동물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속속 입증되고 있다. 김병수 공주대 특수동물학과 교수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충정과 사랑은 주인의 자존감을 높인다. 사람이 반려동물과 맺는 유대감과 결속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반려동물에 관심을 기울이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일이 줄어 우울증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반려동물과 같이 있으면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의 분비가 활발해진다. 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인 코티솔은 줄여준다. 반려동물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아토피나 천식에도 강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그런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강해져 천식이나 피부병에 걸릴 위험이 적어진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하면서 관련 산업은 성장일로다. 국내 반려동물 용품에 쓰이는 비용은 매년 14.3%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농협경제연구소 김태성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반려동물 사육 가구 비중은 62%, 일본 27%로 한국 17%보다 훨씬 높다. 또 미국·일본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반려동물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0.3% 수준으로 한국의 5배에 달한다”며 “국민 소득수준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가면서 동물에 대한 인식은 더욱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1일 열린 순천만 세계동물영화제에서도 반려동물 상품을 내놓은 부스에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 가지 밥그릇만 판매했다면 최근에는 개의 머리 높이에 맞춘 다양한 밥그릇이 나온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숯으로 물을 정화해 일정한 양을 계속 공급해 주는 ‘개 물그릇’, 벨기에에서 수입한 ‘개 맥주’가 눈에 띄었다. 김병구 도그비어 이사는 “보리 맥아로 만든 ‘개 맥주’에는 비타민 B가 풍부해 (견공의)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뿐 아니라 개의 여가생활을 위한 제품도 나왔다.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한 개 전용 TV채널 ‘도그(DOG) TV’ 가입자는 7000명을 넘어섰다. 월 50만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반려견 전용 유치원은 직장에 있는 동안 반려견을 혼자 집에 둬야 하는 싱글족들에게 인기다. 반려견들은 유치원에서 배변학습, 사회화 교육 등을 받고 간식도 먹는다. 교사는 매일매일의 반려견 활동을 적은 알림장을 ‘부모’에게 보내줘 ‘자식’ 같은 반려견의 하루를 소상히 알려준다.



 반려동물을 위한 화장시설도 등장할 전망이다.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 20일 “부천·과천 등 9개 시와 공동으로 건립을 추진 중인 공동종합장사시설 터에 반려동물 화장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명 시대에 맞는 장례문화 조성을 위해 전용시설 건립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반려동물은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로 규정돼 있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지거나 불법 매립되고 있다. 화성시는 동물 화장시설 설치가 가능하도록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글=박혜민 기자, 순천=김민상 기자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사진 설명



21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정원에서 열린 ‘제2회 세계동물영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대학 애견학과 학생부터 동물보호 시민단체 회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기르는 동물들과 함께 참여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 어린이와 악수하고 있는 골든리트리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페키니즈. 잔디 위에서 뛰어놀고 있는 브라운 푸들과 화이트 몰티즈. 브리티쉬 숏헤어(모모). 화이트 푸들(둥실이·왼쪽)과 미니어처 슈나우저(지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