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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회주의 있었기에 자본주의 성공했다

중앙일보 2014.08.23 01:14 종합 22면 지면보기
도널드 서순 교수는 유럽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저작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현재는 1880~1914년 세계 자본주의에 대해 집필 중이다. [사진 황소걸음]


사회주의 100년 1, 2

『사회주의 100년』 도널드 서순 인터뷰
사회주의 유효성 이미 사라졌으나
서유럽 인권·평등 증진에 큰 기여

도널드 서순 지음, 강주헌·김민수·강순이·정미현·김보은 옮김, 황소걸음

1권 952쪽, 2권 840쪽

1권 4만8000원, 2권 4만4000원




“사회주의 없는 자본주의야말로 최악의 위기다.”



 1996년 도널드 서순은 사회주의의 패배를 인정했다. 『사회주의 100년』에서 1889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 14개국 좌파 정당의 역사를 샅샅이 훑은 후 내린 결론이다. 18년 만의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본지와 한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우려했다. “지난 100년 자본주의 덕에 사람들의 삶은 확실히 나아졌다. 하지만 이 발전은 사회주의의 견제·규제 덕이었다”고 주장했다.



 서순은 “제대로 된 사회주의 정부는 이제 거의 없다”며 “자본주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가 생명력을 다했다는 진단은 지난 18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 책은 지금껏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어 등 7개 국어로 번역됐다. 20세기 역사학의 거장이자 서순의 스승인 에릭 홉스봄이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서평을 쓰며 “조만간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이라 예고한 대로 된 것이다.



 서순은 “집필에만 6~7년이 걸렸다. 한국 독자들의 인내심이 풍부하기를 바란다”는 위트 섞인 당부로 e-메일 답변을 시작했다. 한국어판은 두 권 합쳐 1792쪽. 주석·참고문헌만 280쪽이 넘는다. 대표적 ‘백과사전형’ 저자인 그는 “책의 분량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다루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사회주의의 가장 큰 실패원인을 국민국가에 머물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의 확장과 비교해보라. 자본주의 성공에 기준은 없다. 그저 계속 가는 것만 중요하다. 체제의 지속이 유일한 목적이다. 지속은 결국 확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 원하는 곳 어디로든 날아가 이익과 시장을 찾는다. 반면 사회주의는 본래 국제적 슬로건을 가지고 출발했다. 세계 노동자의 연대를 보라. 그러나 원하던 대로 영향력 있는 정당이 됐을 때, 시각과 정책을 국가의 틀에 맞춰야 했다. 국가라는 틀에 포위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국제화를 따라잡으려 했다면 유럽연합(EU)과 같은 국제조직에 깊이 관여해 공동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했어야 한다.”



 -견제 세력이 없는 자본주의의 모습은.



 “규제·조정이 없는 상황은 자본주의에 최악이다.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언제나 높은 세금, 과도한 규제에 대해 불평한다. 근시안적이다. 자본주의의 오랜 지속은 사회주의가 역할을 맡은 규제 덕분이었다. 복지개혁, 재분배는 물론이다. 노동자의 교육·건강·연금 문제를 관리해 노동력을 공급했다. 역설적으로 사회주의는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과 강화에 도움을 줬다. 현재 자본주의는 이런 도움 없이 목적 없는 확장을 하고 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체제를 변화시켜야 평등·인권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이제 진보적인 대안은 자본주의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평등·인권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찾는 정당과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부의 집중 문제가 화두다. 당신의 생각은.



 “불평등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19세기에 말·마차로 여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를 떠올려보라. 또 20세기에 롤스로이스를 모는 사람과 작은 차 소유자의 차이를 비교해보라. 삶의 수준으로 봤을 때 격차는 줄어들었다. 이처럼 단순히 숫자로 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 최근의 불평등은 확실히 개선됐다. 내 말은 발전된 자본주의 체제의 삶이 확실히 100년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당에 대해 알고 있나.



 “불행히도 정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뛰어난 교육 시스템과 국가 주도형 경제 발전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방대한 저작을 서술하는 방법은.



 “나는 건축에 비교한다.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 답을 얻고 싶은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기본 구조다. 이번 책의 경우 주인공은 사회주의자와 좌파 정당이다. 내가 흥미 있게 본 것은 이들의 세력이 약하고 만년 야당일 때 행동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 권력을 쥐었을 때가 궁금했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잡고 난 1945년 이후의 내용이 책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기본 구조에 근거해 내용을 얻은 후에는 범위를 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서유럽 국가만 대상으로 했다. 정기적 선거라는 요소를 각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루지 않을 내용도 정확히 정해야 한다. 나는 아주 작은 정당은 다루고 싶지 않았다. 또 공산주의 정당은 이탈리아·프랑스만 취급했다.”



 -스승인 홉스봄에게 배운 것은.



 “홉스봄은 내가 1970년대 쓴 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한 박사 논문의 지도교수였다. 그는 건축적 역사 서술의 요소를 가르쳤다. 또 증거가 명확할 때, 구조상 필요할 때라면 기존의 입장을 용감히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든 역사 문제에서 한 국가의 사안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최종적으로 그는 좌파든 우파든 누구에게라도 배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홉스봄이 평생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아해하겠지만 말이다.”



김호정 기자



도널드 서순  영국 런던대 퀸메리 칼리지 유럽비교사 명예교수. 이집트 카이로 출생. 이탈리아사, 작품 모나리자의 역사, 유럽의 200년 문화사에 대한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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