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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지진·산불·전쟁 … 과학도 예측 못 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4.08.23 01:01 종합 23면 지면보기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고베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2의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고가도로. 이 지진으로 6434명이 사망하고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중앙포토]


우발과 패턴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시공사

380쪽, 1만6000원




고도로 발달한 현대과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진이다. ‘설명’하지 못한다기보다 ‘예측’하지 못한다는 편이 정확하겠다. 단순히 보면 지진은, 지구 표면을 떠도는 대륙판들이 서로 비벼댈 때 지각이 재배열되며 일어나는 흔들림이다. 하지만 1995년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물론 세계사에 남은 대지진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 일어났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지진의 리듬과 미리 결정된 패턴을 찾으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재까지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예측이 힘든 것인가.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 전문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자연계의 변화나 인류의 역사는 분명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패턴이 있다면 예상도 가능할 듯 하지만, 쉽지 않다. 정확히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여부는 상당부분 우발적인 부분에 기인한다. 책의 제목이 『우발과 패턴』인 이유다.



 저자가 설명의 도구로 삼은 것은 세계를 비평형 상태로 인식하는 비평형 물리학, 즉 복잡계 물리학이다. 수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해 변하지 않는 우주의 근본 법칙을 찾으려 했다. 양자론이나 상대성 이론 등이 이런 노력에서 나왔다. 복잡계 물리학은 세계를 평형 상태가 아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불안정 상태로 본다. 이런 비평형 상태에서 사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소용돌이치는 대기의 흐름에서 인간의 뇌까지 방대한 영역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진이나 거대한 산불 등 예기치 못한 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임계상태 때문이다. 임계상태란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과도하게 민감해진 상태를 말한다. 모래알을 하나씩 떨어뜨리다 보면 모래산이 만들어지고,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어느 시점 산사태가 일어난다. 이처럼 임계상태에 있는 세계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엄청난 격변을 일으키며 세상을 요동치게 한다. 하지만 이 격변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언제 일어날지를 정확히 알긴 힘들다. 지진을 예로 들면, 대륙판은 수백 종류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이 바위들의 성질은 각기 다르다. 어떤 단층은 고지대의 산악에, 또 어떤 것은 평원이나 구릉지에 있다. 같은 임계상태라 하더라도 수천 가지의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임계상태-사소한 자극-격변’이라는 패턴을 자연현상뿐 아니라 전쟁이나 증시 붕괴, 도시의 발생 등 다양한 인간 역사의 현장으로 확대해 설명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증시 대폭락 같은 경우도 자본시장의 불안정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어떤 사건에 군중심리가 발동하면서 일어난다. 이런 역사의 패턴에 비한다면,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 개개인의 선택이나 자질 등은 ‘우발적인 자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에는 멱함수 법칙, 프랙탈 이론 등 일반독자에겐 익숙치 않은 용어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현상을 예로 들며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결국 자연과 역사의 작동방식에 대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어쩌면 조금 허무하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사건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지는 ‘불안정성의 고리’가 세계를 어떻게 누비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가 될 수 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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