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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21> 성인·신선·부처는 시대의 산물 가톨릭 시복식이 주는 의미는 …

중앙일보 2014.08.23 00:59 종합 23면 지면보기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나 아주 먼 고대에는 정신적 수준 곧 영성(靈性)의 등급에 따라 계급이 정해졌다. 가령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제사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았던가.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인 은나라의 임금은 사제와 통치자를 겸한 무군(巫君, Shaman King)이었다. 동양사회에서의 사-농-공-상 신분 서열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고도의 정신능력을 갖춘 이상적 인물인 사(士)를 정점에 놓은 뒤, 그 아래 농-공-상은 편견의 여지가 있으나, 옛날 사람들의 관념(주로 사의 입장)에 의하면 결국 ‘거짓말을 얼마나 적게 하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된 셈이다. 원칙은 이렇고 실제로는 사가 제일 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영성에 의한 등급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곳은 종교 분야다. 유교에서는 일반 유자(儒者)보다 높은 등급으로 현인, 다시 그 위로 아성(亞聖)과 성인을 설정해놓았다. 가령 성균관 문묘(文廟)에 배향된 유교 인물들을 보면 최고 성인으로 공자가 있고 그 밑에 안자, 맹자 등 아성이 있으며 다시 그 아래로 주자·정자 등과 한국의 퇴계·율곡 등 현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도교에서는 일반 도인이 수련을 잘하면 최고 단계인 신선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옛날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하늘을 날고, 도술이 뛰어나며 불로장생하는 슈퍼맨이 곧 신선이다. 그런데 이 신선도 등급이 있다. 갈홍(葛洪)에 의하면 “최상의 인물은 몸을 들어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을 천선(天仙)이라고 한다. 다음 가는 인물은 명산에서 노닌다. 이것을 지선(地仙)이라고 한다. 마지막 수준의 인물은 우선 죽었다가 나중에 허물을 벗는다. 이것을 시해선(尸解仙)이라고 한다.(上士擧形昇虛, 謂之天仙. 中士遊於名山, 謂之地仙. 下士先死後<86FB>, 謂之尸解仙)”(『포박자(抱朴子)』 ‘논선(論仙)’) 신선 전기집을 보면 중국인의 시조 황제(黃帝)는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천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에 30여명의 신선이 실려 있는데 단군, 동명성왕 역시 천선으로 서술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에는 천선이 많다가 후대에는 지선과 시해선이 압도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지상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합리화 등에 의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기독교에서도 일어났다.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는 중산층이 형성되는 13세기 무렵에 내세의 중간 장소로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 탄생했음을 논증한 바 있다. 영성의 개념 및 구성도 역사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윤지충 등 조선의 순교자 124분을 복자로 추존하는 의식, 곧 시복식(諡福式)을 거행했다. 가톨릭에서 복자는 성인 전 단계의 존재다. 복자에서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고 기적의 사례가 검증되면 성인으로 추존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에 이미 김대건 신부 등 103분이 시성(諡聖)된 바 있다. 대한민국은 유교의 현인, 도교의 신선 등(불교는 깨달은 분들이 너무 많아 생략했지만 수많은 부처들)과 더불어 이제 가톨릭의 성인과 복자까지 다수 배출한 영성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에 부끄럽지 않게 모두 마음 자세를 가다듬을 일이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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