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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냥 그림책? 어머, 이건 아트북이야

중앙일보 2014.08.23 00:42 종합 24면 지면보기
『나, 꽃으로 태어났어』는 병풍처럼 펼쳐지는 팝업북이다. 페이지마다 접혀있는 종이를 펼치면 꽃으로 피어난다. [사진 비룡소]


#1. 책을 펼치고 페이지마다 접혀 있는 종이를 또 펼쳐 나가면, 꽃이 핀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따스한 햇살을 받고 따뜻한 기운을 나누며 살아가요…난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이겨냅니다.” 한 페이지에 한 줄씩, 거의 시다. 한 장 한 장에서 꽃을 피운 이 책은 병풍처럼 좍 펼쳐진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 프리마(처녀작) 부문 우수상을 받은 『나, 꽃으로 태어났어』(엠마 줄리아니, 비룡소)다. 아이에겐 탄성을, 어른에겐 명상을 선사할 책이다.



 #2. 빨간 표지의 책을 펼치면 알파벳 ‘A’가 도드라져 올라온다. ‘B’는 오른쪽 페이지에서 슬며시 미끄러져 나오고, ‘V’와 ‘W’는 한 페이지에서 거울로 만난다. 알파벳의 재발견이다. 프랑스 주간지 ‘텔레라마’의 아트디렉터 마리옹 바타유의 팝업북 『ABC3D』(보림)다. 이 저자의 숫자책 『10』도 함께 나왔다. 그래픽 디자이너 윤여경씨는 『10』에 대해 “보편적 문자인 숫자의 조형성에 주목했다. 1과 10, 2와 9를 연결해 순환되는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평했다.



 그림책은 애들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는 시리즈들이 속속 출간된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는 비룡소의 아트북 시리즈인 ‘지브라(zebra)’의 일곱 번째 책이다. 2012년 5월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1907∼98)의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시작으로 일반적 어린이책의 판형을 벗어나 수작업하거나, 여러 질감의 종이를 사용하는 등 실험성을 높인 그림책을 출간하고 있다. 최근엔 인도에서 실크스크린 수작업으로 만들어 일련번호를 붙인 에디션 북 『꿈꾸는 소녀 테주』도 펴냈다. 인도 하층민 출신 소녀 테주가 화가의 꿈을 이뤄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판화책이다. 보림 또한 2010년 11월부터 소장 가치를 높인 그림책 ‘더 컬렉션’ 시리즈를 내고 있다. 지난달엔 펼치면 10m 병풍이 되는 그림책 『나비부인』을 내놓았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피에르 로티의 ‘국화부인’을 각색한 이야기로 앞면은 유화, 뒷면은 색연필과 수채로 그렸다. 원작의 내용도 그렇지만, 유아용이라고 하기 어려운 몽환적 일러스트다.



프랑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리옹 바타유가 만든 『ABC3D』는 알파벳 한 자 한 자를 3D로 만드는 팝업북이다. 예컨대 위 사진처럼 ‘M’이 솟아 올라온다. 『10』은 숫자 1∼10의 조형성에 주목한 같은 저자의 팝업북이다. 『나비부인』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나비 모티브를 강조해 만든 병풍책이다. [사진 보림]


◆디지털 세대를 위한 아날로그책=『나비부인』은 5만원, 『꿈꾸는 소녀 테주』는 3만원이다. 불황의 출판계에 때아닌 고급 그림책 바람일까. 비룡소 편집부 김산정씨는 “지난 5년새 그림책 매출은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보는 책이라는 본령으로 돌아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보림의 박은덕 편집팀장은 “저출산·게임·학습을 그림책의 3대 적이라고들 한다. 읽지 않고 보는 세대를 위한 그림책을 고민하다가 역발상으로 인문·예술의 향기가 물씬한 그림책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세대의 변화에 부응하려 태어났다는 이들 그림책은 오히려 아날로그로 회귀한 형태다. 읽기보다 보기, 한 장 한 장 넘기며 체험하기를 극대화했다. 김산정씨는 “그림책 시장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386세대와 달리, 요즘 부모들은 책에서 답을 구하는 습관을 가진 세대가 아니다. 이들을 위한 다른 책보기 방식의 필요성을 느낀 실험”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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