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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굿모닝 미스터 오웰 그후 30년"

중앙일보 2014.08.23 00:18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연수
소설가
얼마 전 백남준아트센터에 갔다가 영국 밴드 톰슨 트윈스의 ‘홀드 미 나우’를 다시 만났다. 1984년 백남준이 기획한 위성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송 30주년을 맞아 지금 열리는 특별전에서 당시 그들이 출연한 장면이 재상영됐던 것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해 1월 1일 백남준은 뉴욕과 서울과 런던의 방송국을 위성으로 서로 연결한 뒤 각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했다. 덕분에 한국의 지방 소도시에 살던 중학교 2학년 학생인 나도 KBS 화면으로 런던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는 ‘홀드 미 나우’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쌍방향 실시간 TV쇼에서 백남준은 “안녕? 오웰. 너의 예언은 틀렸다. 발달된 과학기술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안심해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만끽해라”라는 멘트를 내보냈다. 이 말은 이 다음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예언과 같았다. 스마트폰의 앱만 건드리면 BBC 라디오나 코파카바나 해변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특별할 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과 사뭇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신문과 방송에서 보도하지 않는 한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밝은 세상이라니. 나로서는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두고 백남준은 21세기는 1984년에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는데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 다음은 다들 아는 이야기다. 인터넷이 각 회사와 가정을 하나의 망으로 연결했고, 뒤이어 휴대전화는 개인과 개인을 연결했다. 덕분에 홀로 산책할 때도 나는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상태다. 이는 백남준을 비롯한 기술 낙관론자들이 의도한 결과다. 백남준은 오웰의 말처럼 빅 브러더의 검열을 받은 매스미디어가 사상 통제를 하는 미래를 피하기 위한 간단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건 매스미디어를 서로 연결시키는 일이었다. 이 연결은 힘의 강약을 떠나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과연 백남준의 예언처럼 이 세계는 밝고 새로워졌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그가 84년에 오웰에게 한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그는 반만 옳았다’고. 발달된 과학기술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 새롭긴 한데, 이건 밝아도 너무 밝아서 문제다. 이 강한 기술의 빛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공히 환하게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세계가 권력자가 원하는 것에만 빛을 비추는 통제사회였다면, 여긴 작열하는 기술의 빛 덕분에 어떤 굴곡도 없이 평평해진 사회, 즉 사막 같은 곳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최근 출간된 『뉴스의 시대?』에서 알랭 드 보통은 “권력을 공고히 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 통제 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그 또는 그녀는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단신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썼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맥락은 생략한 채 뉴스의 의제를 계속 바꾸면서 ‘속보’라는 딱지를 붙여 포털 뉴스로 내보내기만 하면, 자신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파악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돼 있다. 맥락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모든 뉴스는 찬반 논쟁의 장이 되고,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단신들로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유야무야 잊힌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홀드 미 나우’를 부르는 톰슨 트윈스를 보는데 그때의 중학생이 이젠 중년이구나 하는 회한이 들었다. 그러나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은 300여 명이 죽은 대참사의 진상을 둘러싼 뉴스보다 모 지검장이 길에서 몇 번이나 음란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뉴스가 더 중요해진 사회가 되어버렸다. 실시간 연결을 통해 뉴스를 검열하는 통제사회에서 벗어났지만 이제는 통제되지 않은 사실과 의견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면서 정작 중요한 의제들은 망각하게 돼버린 것이다. 실시간 연결에서 벗어나 삶의 맥락에서 현실을 판단하는 사색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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