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일본의 약탈 문화재 환수

중앙일보 2014.08.19 00:22 종합 26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7월 30일자 30면>

정부, 일본 약탈 문화재 환수 적극 나서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서 반출해간 문화재 목록을 작성했으면서도 한국의 반환 요구를 우려해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1965년 한국에 일부 문화재를 반환하면서 희소가치가 큰 문화재는 제외한 정황도 드러났다. 일본 시민단체인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홈페이지에 올린 도쿄고등법원 판결문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오노 게이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은 일 정부를 대리해 도쿄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돼 있다”며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개 대상 문서에는 한국에 양도한 일부 서적에 대해 학술적 평가가 낮다는 일본 관계자의 발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혀 가치가 작은 문화재 중심으로 반환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했다. 그는 “반출 경위가 공개될 경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해 불법적으로 강탈한 문화재도 있음을 암시했다. 그의 견해를 받아들여 도쿄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한·일 양국은 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부속 조약 중 하나로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한국은 약 4000점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1431점만 반환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문을 통해 당시 일 정부는 한국의 반환 요구에 대비해 광범위한 목록을 작성했고, 그중 희소가치가 작은 일부 문화재만 돌려준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일본 내 한국 문화재는 6만6800여 점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일본이 약탈해 간 문화재일 개연성이 크다. 전체 목록과 반출 경위를 알면 한국이 당연히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일 정부도 그동안 숨겨온 것이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정부는 정확한 진상부터 파악해 일본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문제를 제기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한겨레 <8월 1일자 31면>

일본의 약탈 문화재 환수, 꼼꼼하고 끈질기게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 조만간 도쿄국립박물관을 상대로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약탈 문화재 환수운동이 벌어질 때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남선전기 사장을 하던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도굴된 고고유물과 고미술품 등을 사들인 뒤 이를 일본으로 빼돌린 물품들이다. 이 안에는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이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에서 수집한 12각상 등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조선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문화재까지 노략질해 갔으니 통한의 역사가 피범벅 돼 있는 물품들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시기에 무려 6만점의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그렇지 개인적으로 빼돌려진 것까지 포함하면 20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런 문화재를 몰래 감추고 있음이 얼마 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외무성은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돼 있다.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진술했다. 우리 정부가 문화재를 반환하라고 주장하면 “유입 경로를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던 일본 정부가 사실은 모든 정황을 파악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마치 도둑이 “내가 뭘 훔쳤는지 들통나면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니 밝힐 수 없다”고 말하는 거나 진배없다.



 유네스코 협약에 따르면 불법 취득한 문화재는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특히 문서에는 한국 문화재 입수 경위, 목록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다 나와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를 피하려고 목록을 은폐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만큼 강탈 문화재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기록의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이를 돌려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논리 vs 논리] 중앙 “정부, 진상부터 파악” … 한겨레 “일본에 기록 공개 요구를”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약탈을 통해 한반도로부터 반출해간 문화재 목록을 작성하고도 이를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때 일본 측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며 소송을 벌여 온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은 7월 25일에 열린 2심 판결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한일회담이 진행 중이던 1963년 일본 정부는 한반도로부터 가져가 보관한 서적들을 전문가를 시켜 조사한 뒤 ‘희소본’에 표시를 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대일 협상에서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때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도 한국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며 목록의 비공개를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일본이 한반도에서 반출해간 문화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들로 꼽히는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받기 위한 소송이 곧 시작된다. 조선왕조 의궤 등 해외 반출 문화‘ 재 반환 운동을 벌여온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스님은 “오구라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 8월 1일 문화재 소장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조정 신청서’를 발송한 뒤 8월 20일까지 회신이 없을 경우 정식으로 일본 법원에 제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의 사설은 도쿄고등법원 판결문이 난 시점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한겨레의 사설은 혜문스님의 문화재 반환소송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앙은 일본 외무성 동북아과장인 오노 게이치(小野啓一)가 도쿄고등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인용한다.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그동안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돼 있다. 이를 공개할 경우 한국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이 한국정부에 자신들이 불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일본 정부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중앙은 ‘반출 경위가 공개될 경우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일본 외무성의 진술서를 소개한다. 진술서는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불법적으로 강탈한 문화재가 있어 일본에 대한 한국의 여론이 나빠질 것이 두려우니 문서공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 정부측의 입장을 담고 있다.



 중앙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반환 요구에 대비해 광범위한 목록을 작성했고, 그중 희소가치가 작은 일부 문화재만 돌려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이 약탈문화재 보유 목록을 축소했으며, 희소가치가 작은 문화재, 쉽게 말해 소장가치가 없는 문화재를 한국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1431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았지만 그 중에는 짚신· 돈가방· 막도장 등 문화재로서 실속이 없는 물품들이 많았다. 일본은 한국에게 돌려주었다는 생색만 낸 셈이다.



 중앙의 사설이 일본 도쿄고등법원 판결문과 외무성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어조로 서술되어 있다면 한겨레의 사설은 다소 감정적인 어조로 진술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겨레의 사설에 나타난 감정적 태도는 ‘명성왕후 살해’와 ‘문화재 반출’이라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겨레는 ‘오구라 콜렉션’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이 명성황후의 거처인 건청궁에서 수집한 12각상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조선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문화재까지 노략질해 갔으니 통한의 역사가 피범벅 돼 있는 물품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의 문화재 반출은 ‘노략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어조는 감정적이라기보다 직정적(直情的)이다. 일본 정부가 우리 문화재를 ‘몰래 감추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표현은 감정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다. 일본의 시민단체가 일본정부에 공개를 요구한 문서에는 한국 정부에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마치 도둑이 내가 뭘 훔쳤는지 들통나면 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니 밝힐 수 없다라고 말하는 거나 진배없다.’라는 한겨레 사설의 표현도 역시 사실의 차원에서 해석되고 고려돼야 할 문제다. 문제는 표현이 아니라 그 내용이지 않겠는가. 



 중앙과 한겨레 모두 일본 정부와 법원이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한, 1965년 ‘한·일협정’ 당시의 문서를 전면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반출해간 한국문화재의 전체목록과 경위를 한국에서 알게 되면 한국이 당연히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중앙은 이런 사실이 드러난만큼 한국의 정부가 ‘정확한 진상부터 파악해 일본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본다.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라는라고 하며 중앙은 환수 문제의 해결이 한·일 국교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어조는 중립적이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 교사
 한겨레 사설의 어조는 사뭇 단호하고 직정적이다. 특히 일본의 ‘문서에는 한국 문화재 입수 경위, 목록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다 나와 있으므로 ‘강탈 문화재’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기록의 공개를 강력히 요구하고 이를 돌려받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서야 직정적 어조로 말하고 있다.



 중앙의 객관적인 어조, 한겨레의 직정적인 어조, 두 사설에 나타난 발화(發話)의 표면은 다르지만 그 발화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같다.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반출해간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 교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