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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만해를 읽는 시간

중앙일보 2014.08.19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태준
시인
“이 땅에선 꽃도 나무도 새도 벌레 한 마리도 모두 독립을 외칩니다. (…) 푸름이 저마다 낱낱으로 한 몸을 이루어 울창합니다. 샘물은 저를 뒤집는 힘으로 서늘한 고요 속에 있습니다. 저 나무를 우리의 당수로 모셔본들 어떨까요.” 손택수 시인이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의 서거 70주기에 부쳐 쓴 시 ‘황금 편백나무의 결사’의 일부다.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생명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제 자신을 뒤집을 줄 안다. 스스로 고유하고 존엄하며 스스로 역동적으로 변화할 줄 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 머무는 동안 내가 가까이에서 본 여름의 생명 세계 또한 그러했다. 흐르는 물, 완강하게 버티고 앉은 바위, 익어가는 옥수수(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옥수수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노랗고 단단한 웃음을”이라고 멋지게 노래했다!), 중천을 이착륙하는 잠자리, 차오르는 달, 사방으로 세력을 뻗어가는 풀밭, 테두리가 높게 커지는 여름 산이 그러했다. 생명 세계는 스스로 유신(維新)하는 힘을 갖추고 있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글을 읽으며 며칠을 보냈다. 선생의 시집 『님의 침묵』 첫머리에는 사족(蛇足)이라는 뜻으로 겸손하게 표현하여 붙인 ‘군말’이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엄혹했던 식민지 시대에 쓴 이 명문에는 뭇 생명의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절절한 마음이 녹아 있다.



 이번 독서에서 나를 호되게 매질한 것은 선생이 1910년 12월 8일에 완성한 『조선불교유신론』이었다. 이 글에서 선생은 불교 유신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수행자의 결혼을 자유의사에 맡길 것, 심산궁곡에 위치한 절을 도회지로 옮길 것, 각종 의식을 간략하게 할 것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안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종단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쇄신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나를 크게 경책한 문장들은 세속의 인심(人心)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었다.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으며 육체가 죽은 슬픔은 그 다음이라고 하였는데, 옛 현인이 이 말로 우리를 속이려 했겠는가.”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히 가졌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갖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반 넘게 황금을 경쟁하는 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선생이 쓴 이러한 문장들을 읽는 순간 나는 쉽게 움직이고, 어지럽고, 어둡고, 물질에 현혹되는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장들보다 나를 바싹 옥죄어 아프게 한 것은 한용운 선생이 ‘방관자’를 꾸짖은 대목에 있었다.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고 더러워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방관자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이라면서 방관자들을 호통쳤다.



 방관자에는 여섯의 부류가 있다고 했다. 혼돈파(混沌派), 위아파(爲我派), 오호파(嗚呼派), 소매파(笑罵派), 포기파(暴棄派), 대시파(待時派)가 그 무리라고 했다. 혼돈파는 세사(世事)에 까맣게 어두워 먹고 잠자는 일에만 골몰하는 무리요, 위아파는 “벼락이 쳐도 편히 앉아서 보따리를 찾는” 무리요, 오호파는 탄식을 일삼는 무리요, 소매파는 배후에서 욕설하고 남을 비방하는 무리요, 포기파는 남에게 기대하고 자신에게는 의지하지 않는 무리요, 대시파는 “스스로 방관자가 아니라고 하는” 무리라는 것이다. 세상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하는 세태를 이처럼 세세하게 나누어서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게 나무라는 말씀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은 ‘조선독립의 서’ 첫 문장을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라고 썼다. 생명 세계는 스스로 독립을 부르짖고, 스스로 혁신한다. 그러나 생명 세계의 본래 성품과 질서를 온전히 보호하는 일은 조금만 방관해도 어렵게 되고 만다. 혹여 소매에 손을 찌른 채 이 일을 방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돌아볼 일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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