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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욕먹기를 두려워 말자

중앙일보 2014.08.19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소파를 샀다. 배달 예정일로부터 6일이나 지났다. 전화를 했다. “이번 주에 가요. 모르는 번호라도 전화 꼭 받으세요.” 당연한 말씀. 여름옷은 대개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전화기를 손에 꼭 쥐고 다니며 일을 했다. 약속한 그 ‘이번 주’가 지났다. 또 전화를 했다. “내일 도착하니 전화 꼭 받으세요.” 이번엔 앞치마 주머니 속에 전화기를 넣고 다녔다. 연락이 없다. 다음 날. 꼭두새벽에 전화를 했다. “기상 악화로 중국에서 오는 데 차질이 생겨 그 소파는 포기하셔야…” “포기요? 소파가 지금 어디 있는데요?” “태풍 땜에…” “그럼, 지난주 중에 꼭 배달될 거라 했던 사람 바꿔 줘요.” 몇 시간 후 걸려온 전화. “전 물건 오면 배달하는 사람이라 뭐가 뭔지 몰라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일 터지면 모조리 ‘네 탓이오’ 하는 건 우리나라의 고질병인가 보다. “뭐가 뭔지 아는 사람을 내가 꼭 찾아내서 이유를 묻겠다” 하곤 전화를 끊었다. “모든 건 고객 만족을 못 시켜 드린 제 불찰이니 용서를…”이라는 홈쇼핑 팀장의 전화. “이런 참사는 모두 제 불찰 운운하는 대통령과 당신이 뭐가 달라요. 늦어도 지난주까지는 도착한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바꿔 줘요.” 결국 담당자와의 통화. “선적 담당자가 그때 되면 도착할 거라 하기에…” “세월호랑 똑같네요. 정확하지도 않은 걸 왜 짐작해서 통보하느냔 말이에요.”



 다시 체크한다며 전화를 끊더니 “오늘 도착해 내일 배달 예정”이란다. “내가 빨리 받으려고 화를 낸 게 아니에요. 앞으로는 확실하지도 않은 걸 확실한 것처럼 전달하지 말고, 책임질 수 있는 말만 전달하세요.”



 내가 왜 이토록 흥분했을까. 그들 속에 혹시 내 모습이라도?



 엊그제 장례식장. “조의금만 내고 금방 나올게요’ 하며 대충 차를 세우고 들어가선, 말한 걸 까먹고, 육개장에 홍어무침까지 먹고 나왔다. 결국 큰 곤욕을 치른 후 ‘뱉어 놓은 말에 대한 책임’에 대해 나도 지금 반성 중이다.



 그들은 나를 뭐라 할까. “그 여자 완전 또라이 아냐? 그깟 소파 사면서 무슨 대통령이니 세월호야. 재수 없으려니.”



 괜찮다 욕먹어도. 나 같은 진상손님이 더러워서라도, 말을 전달하기 전 꼭 확인 절차를 거치는 습관이라도 생긴다면 말이다.



 국가개조. 누가 해 주길 기대하지 말자. 작은 일 하나라도 잘못됐다면, 이렇게 ‘부지런히 욕하고 욕먹고 반성해 가며’ 각자 있는 곳부터 바꿔 나가는 게 더 빠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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