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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중앙일보 2014.08.18 17:30
프란치스코 교황이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떠났다. 지금껏 한국을 방한한 교황은 두 명이다. 1984년과 89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순교자의 땅”이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에서도 꾸밈없이 단출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두 교황은 서로 다른 듯, 또 닮았다.



◇가톨릭 역사상 ‘첫’ 교황=1978년에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456년 만에 처음으로 선출된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었다. 가톨릭 2000년 역사를 통틀어 교황직은 요한 바오로 2세 전까지 이탈리아의 전유물이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에서 이탈리아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선출은 당시 상당한 파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찬가지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까지 가톨릭 역사에서 모든 교황이 유럽인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미 출신의 첫 교황이다. 아르헨티나 추기경이 교황이 된 것도 굉장한 파격이다. 남미의 가톨릭 인구가 많아지면서 교회 내에서도 ‘남미 파워’가 갈수록 세지기 때문이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의 부모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이민 1세대다. 국적보다 핏줄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탈리아 사람’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다.



◇분단 지역을 품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해외 방문국은 이스라엘이었다. 그리스도교 성지이면서 이스라엘은 분쟁 지역이기도 하다. 교황은 거기서 타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했다. 18일 명동성당 평화미사에서 교황은 남북한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던 시절, 독일을 자주 찾았다. 1980, 87, 96년 세 차례에 걸쳐 방문해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독일 통일의 초석을 쌓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탄차 마다한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의 ‘포프모빌(popemovile, 교황이 타는 차)’엔 방탄 장치가 전혀 없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타는 기아차 ‘쏘울’뿐 아니라 대중을 만나는 장소에서 탄 무개차(오픈카)도 마찬가지다. 바티칸 개혁을 추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스타일 상 암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파격적 행보다. 그는 취임 직후 전임 교황들이 타던 방탄차를 마다하고 일반 차량에 올랐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제게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신의 뜻이지요”라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차례 방한 모두 방탄차를 탔었다. 1984년 방한 땐 청와대가 제공한 GM의 캐딜락 리무진과 교황청에서 가져온 벤츠 G클래스 등을 탔는데 모두 방탄 유리를 썼다.



사실 교황이 방탄차에 오르는 ‘전통’을 만든 것도 그다. 하지만 대중과의 접촉을 즐겼던 그는 처음엔 방탄차가 아닌 일반 차량에 올라 신도들과 만났다. 하지만 1981년 5월 흉탄에 맞아 생명을 잃을 뻔한 사건이 생긴 뒤로 방탄차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총탄 세 발을 복부에 맞고 몸의 피 4분의 3을 잃었지만 다행히 5개월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암살을 시도한 터키 청년 알리 아자를 교도소에 만나 “용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들은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전용차를 이용했다.



포프모빌은 1960년대 바오로 6세가 처음 탔다. 그전까지 교황은 ‘세디아 제스타토리아(sedia gestatoria, 수송용 의자라는 뜻)’라는 가마를 타고 이동했다. 20세기 후반 가마는 완전히 포프모빌로 대체됐다.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는 포프모빌이란 단어가 품위가 없다며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먹던 전통 음식 즐겨=프란치스코 교황의 식사는 검소하다. 매 끼니를 닭고기ㆍ과일ㆍ샐러드로 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기경 시절엔 대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 그는 “가장 즐기는 외식은 수녀원에서 가서 바냐 카우다를 얻어 먹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냐 카우다는 북부 이탈리아 농부들이 즐겨먹던 전통 가정식이다. 올리브 기름과 엔초비, 마늘을 넣고 끓인 소스에 당근ㆍ양파ㆍ샐러리 등 신선한 채소를 찍어 먹는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커스타드와 크림이 듬뿍 올라간 폴란드식 페스트리 케이크다. 현재 폴란드에선 ‘교황의 크림 케이크’로 불린다.



◇열성적인 축구팬=두 교황의 취향이 확연히 겹치는 지점은 축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시 자신의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축구 클럽 ‘산 로렌소’의 열성팬이다. 그가 축구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메시ㆍ발로텔리 등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유니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 축구계의 오랜 벗”이라고 할 정도로 열성적인 축구팬이었다.



백성호·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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