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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法不阿貴[법불아귀]

중앙일보 2014.08.18 10:23
중국 법원 앞마당에는 여지없이 뿔 달린 짐승 상(像)이 놓여 있다. 해태(??)다. 우리나라 해태에는 뿔이 없지만 중국 신화 속 해태는 뿔이 있었다. 해태가 중국 법원 마당에 웅크리고 있는 이유는 한자 ‘법(法)’과 관계 있다.



중국 전설에서 해태는 시비(是非)·선악(善惡)을 구별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바르지 못한 사람이나 죄인을 보면 뿔로 치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자 ‘法’의 원래 자는 ‘?’으로, 여기에 나오는 ‘치(?)’가 바로 해태의 또 다른 명칭이다. ‘해태(?)가 뿔로 악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뜻과 물(水)이 합쳐져 ‘?’가 됐고, 훗날 쓰기 복잡한 ‘?’가 빠지면서 현재의 ‘法’으로 변했다. 법원 앞마당에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대신 뿔 달린 해태 상이 등장한 이유다.



법가(法家)를 열었던 상앙(商?· ?~BC338)은 법을 치국(治國)의 방책으로 끌어올렸다. 상앙은 진(秦)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강력한 법치(法治)를 실현해 대륙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법으로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쫓기다 죽게 된다. 죽음에 직면한 상앙은 “내가 만든 법으로 인해 내가 죽는구나(작법자폐·作法自斃)”라고 탄식했단다. 법은 모두가 수용할 만한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많이 인용되는 얘기다.



법가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BC280∼233년)에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엄격한 잣대였다. 이를 어긴 죄인에게는 무자비할 정도의 형벌을 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비자』 ‘유도(有度)’편에는 “(목공이 쓰는) 먹줄이 굽지 않듯, 법은 권귀에 아부하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繞曲)”고 했다. 이어 “법의 재제를 받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한 자라 해도 말로 피해갈 수 없으며(智者弗能?), 힘있는 자라도 감히 맞설 수 없다(勇者弗敢?)”고 했다. 법의 엄정함을 강조한 글귀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정치권이 대립하면서 민생법안 처리가 또 다시 불투명해졌다. 법가의 성인들은 오늘 한국 국회를 보면 뭐라 할까? 그들 역시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까.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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