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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관제 구멍 … 맹골수도 또 사고 … 중국어선 불법 조업 단속도 손 놔

중앙일보 2014.08.18 01:28 종합 23면 지면보기


해경과 해양수산부는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의 1차 책임 부처로 지목됐다. 4개월이 지난 지금 해경과 해수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실망스럽게도 해수부의 제도 개혁은 첫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사기가 떨어진 해경은 중국 어선 단속 등 본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세월호 4개월 대한민국 안전보고서 ① 해체 앞두고 무기력한 해경



7일 0시 3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넉 달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에서 어선과 화물선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화물선만 관제하고 어선을 관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사고가 일어났다. 120t급 어선이 조업구역을 감추기 위해 ‘송수신용’ 대신에 ‘수신전용’ 선박자동위치식별장치(AIS)를 장착해 VTS가 위치 파악을 못해 관제를 못한 것이다. 이날 사고 현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과는 겨우 10여㎞ 떨어진 곳이다. 검찰이 ‘2인1조’ 근무 규정을 어기는 등 관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진도 VTS 소속 해경 13명을 전원 기소한 뒤에도 해경의 근무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어선설비규칙상 송수신용 AIS는 길이가 45m 이상인 어선에만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소형 어선들은 제외돼 있다. 관련법규가 허술하지만 해경은 법규 보완 등 대책을 세우지 않아 사고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해경 관계자는 “(5월19일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발언 이후 보완할 법규에 대해 개선방안을 만들었지만 국회 등에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세월호 사고 이후 해체될 운명에 놓인 해경 조직 전반에는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14일 부산여객터미널 대합실 내부는 예년보다 승객이 적어 다소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송봉근 기자]


 12일 오후 4시 32분쯤 경남 거제시 다대항 북동쪽 1.1㎞ 바다에서 꽃게잡이 통발어선 벌하호(59t) 전복사고로 승선자 11명 중 6명이 숨졌다. 이날 뒤집힌 배 아래에 만들어진 ‘에어포켓(2×3m)’에서 선원 3명이 구조됐다. 수중 수색에는 해경과 해군 해난구조대(SSU) 38명이 동원됐다. 자칫 출동이 늦었으면 해경이 또다시 도마에 오를 뻔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4개월.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는 진도 팽목항에 집중되다시피 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구조작업은 해경이 맡은 역할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해경이 해야 할 임무는 한 둘이 아니다. 바다에서는 수시로 사고가 터지고 중국 어선들은 불법 조업을 위해 물밀듯 넘어온다.





 진도의 세월호 침몰 현장에 인력과 장비가 여전히 집중돼 있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불법조업하는 중국어선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단속 실적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나포한 중국어선은 2010년 370척, 2011년 534척, 2012년 467척, 2013년 487척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최근까지는 98척에 그치고 있다.



 대형 함정들이 거의 대부분 세월호 수색 작업에 투입되면서 해경 경비함 1척이 100㎞가 넘는 인천~태안 구간을 오가며 경비를 서고 있다. 경비해역이 너무 넓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해경 특공대가 진도 해역에 투입된 뒤 122 구조대의 인력을 중국어선 단속에 대체 투입했지만 한계에 이르렀다. 더구나 꽃게철이 시작되는 9~10월까지 세월호 수색이 계속된다면 중국어선 단속은 더 힘들어 질 것이라고 일선 해경들은 걱정한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줄곧 진도에 체류하고 있다. 회의 때문에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 본청을 찾은 것은 단 한번 뿐이다. 해경 본청의 다른 국장급 간부들도 번갈아 진도를 오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해경 조직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기도 어렵고 해경이 세월호 수습 이외에 본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제는 김 청장 등 해경 지도부의 인적 쇄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명예퇴직자들이 늘고 있는 사실에서 해경의 침체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4월이후에만 85명의 해경이 명퇴했다. 2011년 38명, 2012년 12명, 2013년 42명 등 세월호 사고 이전의 연간 명퇴자보다 더 많다.



 지난 6월 퇴직한 김모(56)씨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 부도덕하고 무능한 해경으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워 퇴직했다”며 “반성의 계기가 되도록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잘못했다고 해체한다면 남아있을 정부 조직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달 초 명퇴한 뒤 새 직장을 찾고 있는 이모(52)씨는 ‘해경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호의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전직 해경’이라고 하면 인상을 찌푸린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해경 내부 게시판에는 해경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해경은 “세 사람이 할 일을 혼자 처리하니 내 일도 안 되고 남 일도 안 되고 개판이 되는 겁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해경은 “인사 갖고 사람 농락 마시고 (현장에서 제대로 일하도록) 함정·파출소 중심으로 정원을 팍팍 채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목포·부산·인천=최경호·위성욱·최모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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