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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검토 … 수익률 악화 땐 깡통 우려

중앙일보 2014.08.18 01:25 경제 4면 지면보기
정부가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퇴직 때 한번에 수령하는 퇴직금제를 없애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주식과 같은 금융상품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높이는 한편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기존 연금보다 공격적 운용 가능
주식 같은 위험자산 한도도 상향
대기업은 이미 퇴직연금 90%이상
중소기업 근로자까지 확대 나서

그러나 투자상품의 수익률이 하락하면 퇴직금이 깎이는, 이른바 ‘깡통 연금’이 생길 수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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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런 내용의 퇴직연금 개편방안을 다음달 중 마련키로 했다. 기재부 이찬우 미래사회정책국장은 “퇴직연금을 기업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적용 시기를 놓고 부처 간에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우선 300인 이상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한 뒤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것이다. 3월말 현재 499만5000명의 상용근로자 중 48.2%가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다. 적립금은 85조3000억원에 달한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 근로자는 대부분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가입률은 상당히 저조하다”며 “이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의무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4~5% 수준이다. 이를 10% 안팎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이를 위해 적립금 가운데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70%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퇴직금의 원금이 보장되는 확정적립형(DB)의 위험자산 보유한도는 70%이지만 수익률에 따라 퇴직금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형)은 40%로 제한돼 있다. DB형은 어차피 원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높여도 문제가 없지만 DC형은 자칫하면 원금의 과도한 손실이 우려돼 이런 제한조치를 두고 있다. 정부는 DC형의 위험자산 보유제한 비율을 확 올리면 퇴직연금이 중·고위험 금융상품에 유입돼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그만큼 손실이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자칫하면 노후생활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제도 외에 기금형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기존 DB나 DC형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계약해서 적립금을 운용한다. 하지만 기금형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별도의 수탁자(수탁기금)를 지정해 운용토록 하는 제도다.



수탁자가 투자펀드나 신탁 형식으로 적립금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증시에 막대한 규모의 퇴직연금이 유입돼 금융시장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이 제도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을 키우려 근로자의 노후 쌈짓돈을 동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펀드나 증권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퇴직연금이 푼돈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DB형에 가입된 근로자는 회사를 나가면서 퇴직원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기금형으로 바꿨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투자한 펀드나 주식이 확 오르면 퇴직금 수령액도 많아지지만 폭락하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일본에선 한 연금운용회사가 240%의 고수익을 미끼로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연금을 유치했다 부실 운용으로 대부분을 날렸다. 이로 인해 88만명에 달하는 근로자는 연금 일부를 받지 못하는 사태를 감수해야 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고용부 관계자는 “금융위기 당시 상당수 펀드가 쪽박 실적을 냈다. 만약 연금이 그 곳에 투자됐다면 돈 한 푼 건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런 리스크(위험)를 통제할 수단이 마땅찮은 상태에서 기금형 제도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기금형 제도는 막대한 운용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기업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별도의 견제·감시장치가 필요하고, 개별 기금을 일일이 감독해야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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