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울림과 감동의 광화문 시복식

중앙일보 2014.08.18 01:08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고석승
사회부문 기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앞으로 복자라 부르고 해마다 5월 29일에 축일(미사)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16일 오전 10시8분 서울 광화문 시복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같이 선포하자 성가대의 찬가와 함께 천주교 신자, 시민 등 수십만 명의 함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시복자 124명의 활짝 웃는 대형 얼굴 그림이 곳곳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공개됐다. 미사포 아래로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취재차 현장에 있던 기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 뜨거운 울림이 있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나라다. 한국 천주교는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있었기에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시복식은 일반적으로 교황의 대리자인 추기경이 집전해 왔다. 교황이 직접 시복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시복식이 더욱 빛났던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몸소 보여준 ‘배려와 위로’의 삶, 소탈하고 격의 없이 낮은 데로 임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미사에 앞서 펼쳐진 카 퍼레이드에서 교황 행렬은 아이들이 눈에 띄면 어김없이 멈춰 섰다. 주저 없이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켜보는 신자들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절로 흘렀다. 수녀와 신부들도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체면 불구하고 의자 위에 올라가 ‘까치발’을 들었다.



 하이라이트는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이었다. 교황이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의 손을 잡은 순간 많은 신자와 시민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광화문 시복식은 특정 종교의 행사가 아니었다. ‘국민 화합과 치유의 장’이었다.



 하지만 ‘옥에 티’도 있었다. 이날 미사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대부분 주최 측이 마련한 행사장 앞줄 VIP석에 앉아 시복식을 지켜봤다. 일부 인사는 부인까지 대동했다. 바닥에 앉아 미사를 본 일반 신자들은 허탈해했다. 지방에서 온 한 신자는 “새벽 4시에 서울에 도착해 밤을 꼬박 새웠다”며 “기쁜 날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종교행사에까지 정치인들이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좋게 보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군경 및 청와대 경호팀의 ‘과잉 경호’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특히 오전 8시30분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광화문광장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모두 통제하자 일부 시민이 거세게 항의했다. 한 참석자는 “아이들을 반대편에 두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갑자기 길을 막으면 어떡하느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부 타 종교 신자의 교황 반대시위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풍경들은 “낮은 데로 임하라” “서로 소통하라”는 교황의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였다.



글=고석승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