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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교황까지 편 가르는 두 개의 시선

중앙일보 2014.08.18 01: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지난 주말 신문들의 1면 사진은 보기 불편했다. 서울공항의 프란치스코 교황 영접 장면이다. 신문 1면 사진은 편집국장과 사진부장, 편집부장, 1면 편집자, 지면 디자이너까지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고른다. 그날의 얼굴이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신문들의 이념과 시각까지 깔려 있다. 15일 1면 사진들은 딱 세 종류였다.



 보수신문들에는 교황과 박근혜 대통령이 주인공이다. 따뜻한 시선으로 맞거나 손을 맞잡는 장면이다. 반면 진보신문들은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 박 대통령은 교황 옆에 가려 있거나 찾아보기 어렵다. 중립적인 신문엔 교황만 등장했다. 환하게 웃거나 국산 소형차 쏘울을 타고 손을 흔드는 소박한 사진이다.



 냉정하게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바티칸의 치밀한 전략이다. 아시아를 겨냥한 동방(東方)공정이다. 세계의 가톨릭 신자는 12억 명. 대륙별로는 아메리카(5억9000만 명)-유럽(2억4000만 명)-아프리카(1억8500만 명)-아시아(1억3000만 명) 순이다. 인구 대비 신도 비중도 아메리카(63.2%)·유럽(40%)은 거의 포화상태이고, 현지에선 바티칸은행의 흑막과 사제 스캔들로 이미지가 망가졌다. 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아시아의 가톨릭 신자 비중은 불과 3%. 그나마 필리핀(신도 7500만 명)을 빼면 불모지나 다름없다. 아시아는 바티칸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교황이 외교관계가 없는 중국 영공을 통과하면서 굳이 축복메시지를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티칸 입장에서 한국 가톨릭은 효자다. 온갖 박해를 딛고 신도 500만 명을 넘었다. 한국 개신교가 교회 세습 같은 추문에 휘청거리는 동안 중산층 엘리트를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인구 대비 신자 수가 서울 신정동은 5%인 반면 도로 하나 건너 부자 동네인 목동은 20%가 넘는다. 종교학자들은 한국 가톨릭의 강점으로 현지화를 꼽는다. 개신교 주류는 프로테스탄트→미국→한국으로 건너와 비교적 근본주의적 성향이 짙다. 반면 가톨릭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다양한 국가를 거쳐 동쪽 끝 한국에 전래됐다. 조상 제사까지 인정할 만큼 거부감이 덜하다.



 당초 청와대와 정부는 교황이 비무장지대(DMZ)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찾아주길 은근히 원했다. 외교전략 차원에서 보다 선명한 대북·대일본 메시지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미사에 초청하는 수준에서 선을 그었다. 대북 메시지도 “같은 말을 쓰는 같은 형제”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바티칸 입장에선 막부 시절 ‘후미에(踏み<7D75> : 예수상과 마리아상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일)’의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를 낸 일본도 굳이 자극할 까닭이 없다.



 뉴욕타임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사회 문제에는 진보적, 신학에는 보수적’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번 방한에서도 사회 문제에 관한 한 진보적 색채가 그대로 묻어났다. 낮은 자세로 약자를 어루만지고 온 사회를 힐링시키는 새로운 리더십이 돋보였다. 하지만 파격이라면 1984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가 더했다. 예고도 없이 광주를 찾은 그는 5·18 진실 규명과 화해를 촉구해 군사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수장의 본모습도 유감없이 보였다. 그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AYD)에 집중했으며, AYD엔 개막식과 폐막식 모두 참석했다. 이번 방한 목적이 아시아의 교세 확장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팬 서비스 차원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에 따라 저마다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교황의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세월호특별법을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보수 쪽은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며 손사래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후 떠난다. 과연 신문의 1면 사진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입국 때와 똑같이 세 갈래로 갈라질까 겁난다. 진영논리에 따라 교황까지 제 입맛에 맞춰 편 가르는 게 아닌지….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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