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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재료에 담은 조선 목기의 아름다움

중앙선데이 2014.08.16 01:02 388호 8면 지면보기
12인용 식탁(2012)의 부분 사진. 화이트 오크, 콘크리트. 300W x 90D x 74H cm
충주의 이름 모를 목공예 장인의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200여 개의 끌과 대패 등 연장 앞에 선 박종선 작가.
조명 기구와 오디오 기구(오른쪽). 특히 오디오 기구는 1호 작품이다. 가죽 연결부위가 끊어져 수리해달라고 들어온 것을 새것을 주고 작가가 다시 가졌다. “초심 확인용”이라고.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는 세계 최대의 미술장터다. 전세계에서 최고의 작품들이 집결하고 이를 구입하려는 각국 VIP들이 말 그대로 구름처럼 모인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2009년 행사에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이헌정 작가의 테이블과 장진 작가의 컵을 구입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세계 최대 미술장터 ‘바젤’서 주목 받은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

지난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서 낭보가 있었음이 뒤늦게 전해졌다.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45)씨가 나무로 만든 책장 1점과 책상 1점이 도합 1억5000여 만원에 팔린 것. 매입자는 한 스위스 기업의 CEO로, 2011년에도 그의 책상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목가구에 이런 엄청난 부가가치를 입힌 것일까. 그게 궁금해진 중앙SUNDAY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달려갔다.

원주시 귀래면의 한적한 국도변. 새들이 쪼아먹지 못하도록 대마다 모기장을 씌워 놓은 옥수수밭 뒤로 그의 스튜디오가 보였다. 컨테이너 3개를 붙여 만든 듯한 이 공간은 각각 사무 및 디자인실, 목재 창고, 전기톱이 있는 제작실로 구분돼 있다. 디자인실 초입에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 타계 20주기 행사 포스터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한살림운동 등을 통해 생명 사상을 주창하며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을 실천한, 원주의 ‘큰 어른’이다.

바닥에는 가구가 되기 직전의 목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지금은 나무 평상을 가죽으로 마감하는 작업이 한창이란다. 모아 놓으면 널직한 평상이지만 펼치면 1인용 평상 8개가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내는 ‘트랜스포머’다. 오는 12월 미국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에 출품할 작품은 아직 노란 종이 위에 스케치로 있다. 10월 초 선적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의 가구가 주목받는 비결은 뭘까. 재료부터 까다롭게 고르기 때문일까. 목재 창고를 보여주던 박종선 작가가 선선히 대답했다. “초기에는 그랬어요.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씁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북미산 오크, 체리, 월넛이에요. 인천의 수입상을 통해 사들여요.”

-제일 좋은 재료는 뭔가요.
“잘라낸 지 오래된 우리나라 느티나무가 최고죠. 잘 뒤틀리지 않거든요.”

-재료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유는.
“좋은 걸 쓰면 물론 좋겠지만, 저는 재료 이야기보다 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식탁용 의자(2012). 화이트 오크. 36.5W x 49D x 44BH 82BH cm
“도면대로 제작하면 건조 … 직관으로 만들어요”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0살 때부터 원주에 살고 있는 박 작가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당시 군부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탄피와 장약을 이용해 초등학교 때 미니 시한폭탄을 만들었을 정도다. 장난감 분해조립에도 능했는데, 특이한 것은 설계도대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라모델 탱크만 해도 독일제와 미국제의 부품을 서로 바꿔 만드는 식이었다.

-작품을 도면 없이 만든다면서요.
“제가 캐드(컴퓨터 이용 설계)도 배워봤는데, 도면대로 만든 결과물은 너무 건조하더라고요. 인간적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팔리지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직관에 의존하는 작업을 하게 됐죠.”

-도면이 없으면 모호해지지 않나요.
“이런 거죠. 저는 약속시간은 정시나 반시가 아닌 어중간하게 잡아요. 그렇게 하면 좀 더 세심해집니다. 낮잠 잘 때도 알람을 32분에 맞춰 놓아요. 그러면 그때쯤 절로 깹니다. 묘하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우선 볼펜으로 개념 스케치를 합니다. 연필로 하면 자꾸 지우려 해서 안돼요. 다음 여기 있는 백토로 미니어처(작은 모형)를 만듭니다. 미니어처도 직관적으로 만듭니다. 3단계로는 미니어처의 스케일을 보고 치수를 유추하죠. 그래서 제 작업은 진행이 빠르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 고민이 많기 때문이죠. 한 번에 하나씩 만드는데, 보통 두 달 정도 걸립니다.”

디자인실 테이블 위에 백토로 만든 미니어처들이 보였다. 앞으로 짓고 싶은 집, 동그란 개집, 청담대교를 닮은 테이블, 인디언 토굴집 등이다. 백토는 말랑말랑한 고무 책받침 같았는데, 형태를 만든 뒤 구우면 그대로 백자가 된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물었다. 오전에 출근해 미팅, 정리 등 이성적인 일을 하고 점심 먹고나서 조수 한 명과 함께 바짝 세 시간 정도 일한다.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세 시간 정도 일한다.

잘 안 풀리는 날이면 기타를 잡는다. 클래식 기타로 분위기를 내다가 전자 기타를 사정없이 스트로크 한다.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던 ‘로커’의 가락은 아직 죽지 않았다. 베이스와 드럼, 키보드 역할은 컴퓨터의 몫이다.

“고교 3년간 밴드에 미쳐 지냈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애들이 2~3년 학원 공부해서 미대에 들어가는 게 시덥지않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림도 안 그리고 결국 대학도 포기했습니다.”

살아 숨쉬는 목재 … 특징 이해하는 데만 10년
제대 후 동네에서 친구와 액자를 만들던 스물일곱 청년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친구가 가구 제작을 의뢰받아 온 것이다. “액자 제작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이었어요. 우선 액자는 제작비가 cm당 10원, 20원 했는데, 가구는 훨씬 비쌌죠. 또 평면이 아닌 입체 작업인데다, 혼자가 아니라 두세 명이 같이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1999년부터 목공 클래스를 열어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2000년부터 문화재청의 전통공예건축학교를 2년간 다니며 조선 목가구 제작 비결을 온몸으로 터득했다. 여기에 18세기 후반 미국의 쉐이커(Shaker) 교도들이 만든 극도로 심플하고 기능적인 ‘쉐이커 퍼니처’를 통해 또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조선 목가구의 미감과 현대적 감성의 완벽한 결합. 최소한의 재료로 최적의 구조를 구현하는 그의 목가구는 날렵하고 단단하다. 긴장감마저 감도는 조형미 속에 슬쩍 집어넣은 편리한 기능과 유머, 쓰는 사람이 완성하는 확장성까지 합쳐져 그의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2011년 제 2회 유민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았을 때 “목수, 가구장이, 디자이너, 건축가 등 나무를 다루는 모든 직업이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던 그다.

-작업에 대한 확신은 언제 들었나요.
“2005년 무렵인데, 그해 혼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의 뮤지엄을 돌아봤는데 ‘얘들도 뭐 별 게 없구나’ 싶은 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귀국해 몇 달 간 작업에만 집중했고 원주 간현유원지 앞 작은 화랑에서 첫 전시를 했어요. ‘나무에게 말을 걸다’였습니다. 제대로 된 나무를 살 돈도 없던 때라 1인용 책상 같은 스케일이 이상한 작품이 많았죠. 그런데 많이들 오셔서 관심을 보여 주셨어요.”

-조선 목가구에서 배운 것은.
“목재는 움직입니다. 여름엔 늘어나고 겨울엔 줄어들죠. 가로, 세로, 깊이, 너비가 어떻게 변할지 감안하면서 만들지 않으면 반드시 하자보수 요청이 들어옵니다. 얇고 단단하게 만들어 부피를 최소화한 조선 목가구의 우수성이 거기 있습니다. 이렇게 목재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만 10년이 걸리더라고요.”

-조명 기구나 오디오용 가구도 많은데.
“빛과 소리를 재미있게 담아내고 싶었어요. 사실 뚜껑을 닫아 놓으면 이게 불이 켜지는 건지 아닌지, 오디오가 들어있는지 아닌지 몰라요. 저기 있는 밥통도 사실은 제가 만든 ‘도란스’(변압기)에요. (의도가) 한 번에 읽히는 것은 재미없죠. 간결한 디자인에 한두 가지 놀랄만한 요소를 숨겨놓는 게 제 색깔입니다. 알아보는 분은 알아보시라는.”

-2009년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에 처음 나간 작품이 완판됐습니다. 해외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요.
“안 물어봤어요. 물어보면 거기에 맞춰 만들게 될까봐.”

이날 자리에는 아트 컨설턴트인 서연종 전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과 이진숙 미술평론가가 함께했다. 이들에게 이 질문을 다시 했다. “박 작가 작품의 미덕은 완벽한 디테일에 ‘방심(放心)의 미’를 더했다는 것이죠. 방심의 미란 완벽한 결과를 넘어선 아름다움, 즉 퍼펙트를 넘어서는 그 무엇입니다. 원형의 아름다움을 다 갖고 있으면서 살짝 틀어졌다고나 할까. 이것이 우리 전통 예술의 핵심이자 큰 지혜인데, 사람들은 대충 만드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이게 문화적으로 축적된 것이 없으면 담아내기 힘든 것이기에 외국인들이 놀라는 겁니다. 테크놀로지만으로는 절대 놀라지 않아요.”(서연종)

“아트페어에 가보면 가구이고 싶어하지 않는 가구들이 많이 보여요. 앉을 수 없는 의자, 바라만 보는 테이블 같은 것들이죠. 디자인 보러 왔는데 현대미술 본 느낌? 박 작가의 작품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탈리아어로 ‘티 안 나는 세련됨’이라는 뜻인데, 로고도 안 보이고 별 특징이 없는 것 같은데 입으면 귀티 나는 명품 브랜드 옷 같죠.”(이진숙)

“무계획 여행에서 영감 … 늘 우주와의 접점 고민”
-작품의 영감은 어떻게 얻나요.
“여행입니다. 혼자 가는 무계획 여행이죠. 혼자 생각하고 스케치하고 외로워서 울어보기도 하는. 지난 여름엔 미국 콜로라도 사막 투어를 지인 3명과 함께 다녀왔어요. 아까 보신 인디언 집 미니어처 같은 것도 이번 여행에서 발견하고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뭉클한 게 느껴지는 게 있는데, 그걸 마음에 담습니다. 언젠가 내 안에서 숙성되고 재해석되겠지 하면서. 뭐, 안 돼도 그만이고요.”

-종교가 있나요.
“없습니다. 다만 우주와의 접점은 생각합니다. 가끔 큰스님을 찾아뵙고 좋은 말씀 들으려 노력하고요. 매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안 팔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페어를 위해 조금씩 새로운 작업을 합니다. 팔리든 안 팔리든. 그걸 힘들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죠. 다만 이걸 팔아야겠다고 마음먹는 것, 그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파는 일은 제 몫도 아니고요.”

-작업이 지루할 때는 없는지.
“20년 이상 이 일을 하다 보니 처음만큼 재미있지는 않아요. 처음엔 결과를 몰랐으니까 재미있었죠. 지금은 결과가 보이니까. 그럴 땐 음악을 듣거나 연주를 합니다. 음악도 다른 세계로 가는 ‘여행’이에요. 1년에 한 번 3일 정도는 음악 하는 친구, 시 쓰는 친구,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모여 연주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존경하는 작가는.
“생존 작가는 없고 다만 르 코르뷔지에는 많이 공부했습니다. 건축을 들여다보면 가구는 어렵지 않은 물성이에요.”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집을 4채 지어봤어요. 건축주와 싸우는 게 제일 힘듭니다. 건축주가 어머님이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요즘에는 이동식 주택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집을 짓고 싶나요.
“가구 같은 집. 기(氣)가 모이는 행복한 집입니다.”

디자이너 박종선에게 가구 혹은 건축은 단순한 밥벌이도, 화려한 예술혼의 구현도 아니다. ‘나는 이걸 하려고 태어났구나’하는 존재의 이유이자 결기의 응축물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저는 제도권 수업을 받지도 않았고 장르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학맥도 없고, 지연도 없고, 재능도 별로 없어요. 어떤 공식 모임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있고 찾아 오면 반갑게 맞이하죠. 하지만 저로서는 어떤 틀을 만드는 순간, 타협입니다. 순응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오직 저를 믿고 제가 느끼는 대로 밀고 나갈 뿐입니다.”


원주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원주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박종선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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