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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유행인가 또다른 미술인가

중앙선데이 2014.08.16 01:19 388호 17면 지면보기
1 이석태 디자이너의 ‘힙스터’ 컬렉션. 1940년대 하위문화 집단이던 힙스터 문화를 테마로 삼아 디자이너 특유의 오트 쿠튀르적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2 임주연 작가의 ‘무제’. 자신이 옷을 벗는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한 뒤 캔버스에 옮겨 그린 작품이다. 3 전시장 전경. 왼쪽에 보이는 작품은 박문희 작가의 ‘blonde woman’으로 옷 대신 털이 신체를 덮고 있다. 그 뒤로 ‘모던 걸’을 테마로 한 김영진 디자이너의 한복이 자리잡고 있다.
4 채규인 디자이너와 전미래 작가의 협업 작품. 거대한 셔츠에 들어가 끊임없이 레일을 도는 퍼포먼스는 마치 트렌드에 속박된 대중을 은유하는 듯 하다.
미술과 패션이 만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5년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회화를 옷으로 풀어낸 이래 둘의 이종교배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쿠사마 야요이가 루이뷔통과 손잡은 것이 대표적인 예. 유수 패션 하우스만의 일도 아니라 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앤디 워홀, 줄리아 오피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와 꾸준한 콜라보레이션을 펼치고 있고, 미국의 신예 디자이너인 로다테 자매 역시 로마 회화를 대표하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패션의 대중성과 미술의 실험성을 서로가 탐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성남아트센터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

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미술과 패션을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가 있다. 8월 5일부터 9월 28일까지 성남아트센터(큐브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과 패션-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이다. 행사는 두 영역의 단순한 합체를 넘어서 미술 속에 드러나는 패션, 혹은 패션에 내재된 미학적 가치를 발견해 보는 기회가 될 만하다.

11명의 작가(김용호·김정현·김준·낸시랭·박문희·성연주·안현곤·이준·임주연·장승효·전미래)와 7명의 패션 디자이너(계한희·김수진·김영진·이보현·이상봉·이석태·채규인)들은 따로 또 같이 작품을 선보이면서 ‘패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거침없이 내놨다. 패션 큐레이터이자 『샤넬, 미술관에 가다』『하하 미술관』등의 저서로 패션과 미술의 관계를 고찰해 온 김홍기씨와 함께 전시장을 돌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옷을 입고 벗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특권
전시장에서 들어서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임주연 작가의 ‘무제’ 연작 시리즈다. 스스로 옷을 입고 벗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다. 이 지극히 기본적인 행위에 천착하는 이유가 뭘까. 착의와 탈의는 개인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을 넘나드는 경계이자 타인의 눈으로부터 자아로 시선을 옮기는 스위치로 풀이된다. 더불어 옷을 입고 벗는다는 자체가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하다. 박문희 작가의 ‘블론드 우먼’도 비슷한 메시지로 읽힌다. 북극곰처럼 길고 하얀 털로 몸 전체를 뒤덮은 여인의 동상. 기괴해보이지만 한편으로 옷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들어주는가 새삼 깨닫게 한다.

패션을 시대의 반영으로 해석하는 작품도 있다. 김영진 한복 디자이너와 김용호 작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대중의 옷차림이 그 사회를 읽는 코드라는 관점은 익숙하지만 이를 한복에서 찾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전시장 한 켠 방에서는 18분 32초짜리 흑백 무성영화가 스크린 위로 흘러나온다. ‘이상의 날개’라는 이름을 단 작품에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당시 모던걸이 등장한다. 허리가 잘록한 양장으로 멋을 낸 뒷모습에 이어 꽃무늬 저고리를 입은 여인. 양복을 입으라는 일제의 강압적 정책으로 밖에선 양복, 집에선 한복을 입었던 시대의 자화상인데, 이를 두고 김홍기씨는 “패션의 환절기에 나타난 복식의 이중화”라는 말로 갈음했다. 영상을 보고 나오면 당시 막 수입되던 리버티 원단으로 만든 한복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5 성연주 작가의 ‘wearable food’ 시리즈. 식재료 본연의 색상과 질감을 그대로 살려 의상으로 구현했다. 6 김수진 디자이너의 ‘서울, 다시 긋다’는 패션이 탄생하는 도시의 지형을 옷으로 풀어냈다. 7 이상봉 디자이너와 장승효 작가가 함께 한 작품은 런웨이를 ‘패션의 활주로’로 구현했다. 디자이너에게는 꿈의 길이자 대중의 취향에 부응해야 하는 현실적 고민이 담긴 공간이다.
8 김준 작가의 ‘somebody-008’. 신체에 새겨진 문신은 마치 세뇌당하듯 우리에게 각인된 브랜드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트렌드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나
작품들이 가장 주목하는 화두는 ‘유행’이다. 채규인 디자이너와 전미래 작가가 함께 꾸민 작품도 그 중 하나다. 패션과 행위 예술이 ‘몸을 매개로 하는 작업’이라는 공통점을 잡아 실험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천장에는 사각형의 레일이 설치돼 있고, 그 아래로 보통 크기의 5배쯤 큰 화이트 셔츠가 있다. 무표정한 작가는 레일과 연결된 셔츠 속으로 들어가 반복적으로 정해진 궤도를 돌아 걷는다. 트렌드의 노예가 된 사회, ‘지름신’이 지피는 강력한 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려낸다. 보고 있자니 꽤 적나라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대중적 취향의 쏠림 현상과 비이성적 소비를 전제할 수 밖에 없는 패션. 그렇다면 ‘유행의 폭력성’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라는 생각거리를 남긴다.

유행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건 성연주 작가의 사진 시리즈 ‘웨어러블 푸드’다. 그는 호박·가지·부추·바나나 등 식재료로 만든 의상을 촬영해 시리즈로 선보이기로 유명한 아티스트. 재료를 놓으면서 예상치 못 하게 미끄러질 때 생겨나는 의외성을 미적 요소로 삼지만 그 대상을 옷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썩어 버릴 수밖에 없는 음식과 언제든 유행이 변하면 버려지는 패션의 속성을 연결시켜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유행의 형성에 주목하는 작품도 있다. 이석태 디자이너는 하위 문화가 어떻게 하이패션을 만들어내는가를 제시한다. 1940년대 도시에 살며 인디음악을 했던 힙스터 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오트쿠튀르 같은 고급스러운 의상을 선보인 것. 이는 낮은 곳에 자리한 패션을 끌어올리는 주체자가 곧 디자이너임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읽힌다. 니나 리치·이브 생 로랑 등의 패션하우스 디자이너들이 군인 속옷으로, 노동자 패션으로 입었던 티셔츠를 고급스럽게 변모시켜 사회 전반에 유행시킨 것처럼 말이다.

런웨이, 스타일의 탄생과 소멸이 판가름나는 곳
전시는 관객들에게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는, 혹은 너무나 당연시했던 이야기를 불쑥 꺼내 놓는다. 김수진 디자이너의 ‘서울, 다시 긋다’는 패션과 도시의 필연적 관계를 말한다. 계급이 없고 새로운 경쟁 사회가 시작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익명성이 유지되는 공동체. 패션은 그런 도시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디자이너는 이런 연관성을 옷으로 풀어냈다. 서울의 변해가는 지형을 옷의 절개와 주름으로 표현한다. 번성했다 사라지는 도시의 역사는 곧 계절마다 생멸하는 옷의 역사와 같은 운명을 지닌다는 점도 흥미로운 관점이다.

김준 작가와 계한희 디자이너가 짝을 지은 작품들은 문신을 모티브로 했다. 김씨는 문신을 테마로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고, 계씨는 지난 컬렉션에서 문신을 테마로 활용했던 경험을 살렸다.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라는 의미에서의 문신은 마치 가치를 세뇌당하는 브랜드와 비슷하다. 그래서 작품은‘당신에게 브랜드란 무엇이냐’란 질문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기를 주문하는듯 싶다.

전시장 한가운데 중심축을 잡고 있는 작품은 그 비중만큼이나 패션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말해주는 오브제다. 장승효 작가와 이상봉 디자이너의 ‘런웨이’다. 디자이너라면 일 년에 두 번씩 서게 되는 런웨이는 어떤 의미일까. ‘활주로’라는 본래 뜻처럼 스타일이라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배경임을 상징한다. 디자이너에게는 자신의 스타일을 대중에 확산시키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개인적 욕망과 대중의 취향이라는 간극을 좁혀야 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강화유리로 만든 런웨이 위에는 과거 컬렉션에서 쓰였던 패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언뜻 보면 한없이 화려해 보이지만 그 중에서 결국 패션으로 기억되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냉랭한 진실로 남는다.

김씨는 “에지·스타일리시·시크라는 말을 너나없이 쓰는 시대가 됐지만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패션의 발전만큼이나 그 본질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말로 전시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작품 수에 비해 관람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진다. 예쁘고 멋진 패션이 아닌 우리 사회의 거울처럼 자리 잡은 패션을 사유할 수 있기때문이다. 전시장 벽면에 쓰인 문구 하나가 이를 대변해 준다. “패션은 우리의 정체성과 심리, 예법, 사회적 지위, 라이프 스타일 모두를 망라하는 기호다.”


성남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성남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성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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