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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속 고양이처럼 저항도 탈출도 못하는데 … " 팔레스타인 친구의 하소연

중앙일보 2014.08.16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파손된 집에서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두려움에 떨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AP=뉴시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요즘은 아예 뉴스를 안 봐.”


김진경의 취리히 통신

 친한 친구 이르마를 만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마자 나온 대답입니다. 이르마는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어머니와 핀란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죠.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스무 살이 돼서야 대학에 다니러 핀란드로 옮겨 간 그는 스스로를 팔레스타인인으로 규정합니다.



 3년 전 스위스에서 이르마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던진 질문을 떠올리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사실 팔레스타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 가지야. 하나는 테러, 다른 하나는 히잡. 내가 무식해 그 나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이런 무례한 말에도 이르마는 털털하게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하면 음식이지. 세계 최고의 올리브유, 건강하고 맛있는 지중해 요리. 내가 ‘레몬 치킨’ 만들어 줄 테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그 순간 처음 만난 이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동지의식을 느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제가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음식이었으니까요. 그의 가족이 팔레스타인에서 보내 준 올리브유를 맛보고, 한국식 프라이드치킨 못지않은 팔레스타인식 레몬 치킨을 먹으며 우린 친구가 됐습니다.



 알고 보니 팔레스타인엔 음식 말고도 세계 최고인 게 또 있더군요. ‘인정’입니다. 주민들이 다같이 동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문화 때문에 집집마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부엌에선 음식 냄새가 온종일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남자 어른을 삼촌, 여자 어른을 이모라고 부르는 건 한국과도 비슷하고요. 가족애도 대단합니다. 이르마네는 여섯 식구가 3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매주 일요일 오후만 되면 모두 컴퓨터 앞에 모입니다. 화상통화로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거죠.



 지중해 연안의 이 정 많은 민족이 ‘테러집단’으로 몰리게 된 건 서방 언론 탓이 크다고 이르마는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은 이 사태가 주인 없는 영토를 놓고 두 세력이 다투는 것처럼 보도를 하지. 이건 동등한 세력의 싸움이 아니야. 센 놈이 약한 놈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죽이는 범죄라고. 기사의 ‘균형’을 잡는다면서 무장강도가 평화로운 가정집에 침입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게 언론이야?” 무장단체로 활동하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집권당이 된 하마스에 대한 국민 정서를 묻자 그는 “법적 절차를 걸쳐 팔레스타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세력이니 당연히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마땅한 공격거리를 찾지 못하자 하마스를 ‘악마’로 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르마는 팔레스타인에 살 때 직접 겪은 일을 들려줬습니다. 이스라엘에 샤론 총리가 취임한 직후인 2001년, 한창 무력분쟁이 심화될 즈음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이 이스라엘군에 점령당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언덕 위의 2층집이라 마을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은,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죠. 이르마의 가족은 1층 한구석에 모여 숨 죽인 채 지내야 했고 모든 생필품 공급이 끊겼습니다. “당장 마실 물도 급했지만 더 절실했다고 기억되는 건 엄마의 담배야. 우리 엄마는 골초였는데 며칠 내내 담배를 한 개비도 못 피우니 ‘담배 하나만 피우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거든. 21세기에 감옥도 아닌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믿을 수 있겠어?”



 한국의 아픈 근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산권·통행권 등의 기본권을 빼앗기고, 죄 없는 시민이 희생당하고, 여기에 저항하면 테러리스트가 됐던 역사 말입니다. 한국인의 반일감정과 같은 것을 그도 느끼는지 물었습니다. “취리히 거리에서 유대인을 마주치면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 저들은 자유롭게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내 나라 국민은 왜 갇혀 있나 생각하면 억울하고 슬퍼서.”



 제가 그의 이야기를 칼럼에 쓴다고 하자 이르마가 꼭 써 달라고 당부한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작은 통 속에 고양이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은 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어. 저항도 탈출도 불가능해. 전쟁이 아니라 제노사이드(집단학살)야. 누가 진짜 테러세력인지 한국 사람들에게 꼭 알려 줘.”



김진경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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