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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바다가 내 술상, 눈물이 내 술벗

중앙일보 2014.08.16 00:50 종합 20면 지면보기
거문도 섬 사람인 한창훈 작가. 그에게 바닷물과 술은 더불어 가장 가깝게 지낸 액체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벗들이다. [사진 문학동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천상 바다사나이 한창훈 작가
고향 거문도서 건진 생의 비의
매일 본 바다·물고기 그리고 소주
멸치 한 마리에도 애정 어린 시선

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352쪽, 1만5800원




술꾼의 품격을 논하는 기준이야 여럿 있겠지만 한창훈(51) 작가는 그 양(量)에서 국주(國酒) 반열 후보로 손색이 없다. 10대 후반부터 시작한 음주력(飮酒歷)이 30년을 넘는 데다 성실하고 꾸준한 밀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양 항해 프로젝트’로 컨테이너선 콜롬보 호를 탔을 때 일화는 술 좀 한다는 이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일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시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씻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합니다. 그러다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여자 생각 간절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108~109쪽)



 이 음주론(飮酒論)을 듣고 난 한 선원이 공식적으로 술이 떨어졌다고 알려진 배 안 어딘가에서 찾아낸 소주 세 병을 쾌척했다니 주(酒)님을 모시는 한 작가의 지극함이 통했다고나 할까. 그의 말마따나 우리 일상에서 술이 지닌 파급효과는 800쪽짜리 법전(法典)보다 크고 세다.



 모양은 물이면서 성질은 불인 술과 함께 그가 사랑하는 비슷한 액체가 바닷물이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에서 태어나 어머니 자궁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다라는 자궁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그의 운명이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몇 이랑의 밭과 배 몇 척과 끝없는 바다로만 돼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하고 아홉 살에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운 이래 그는 ‘세상에 바다가 있는 이유’를 찾아 소설을 써왔다.



 이쯤 되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와 나’ ‘술과 나’를 향한 긴 항해일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멀리 쏘다닐 것이니 외로울 것이고, 풍랑 잦을 테니 멀미는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자산어보’ 아닌가. 올해는 1801년 천주교 신도들을 탄압한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됐던 정약전(1758~1816)이 쓴 어류도감 『자산어보』가 나온 지 꼭 200년. 작가는 피붙이가 죽어나가는 현실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유배객의 마음을 불러낸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에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을 수장시켜버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이가 갈렸습니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죽여 버린 대한민국. 제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그 무능하고 책임 없는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과 품위 유지를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게, 바다가 무참하게 훼손당해버렸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흑산(黑山)에 유배된 정약전은 바다를 바라보고,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었다. 한 작가는 고향 거문도 바닷가에 얻은 월세 10만 원 집으로 돌아온 저녁, 마른 멸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털어 넣으며 사실과 관찰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정약전의 글을 반추한다. ‘추어(<9BEB>魚): 6월 초에 연안에 나타나서 서리 내릴 때 물러간다. 밝은 빛을 좋아한다.’



 그러곤 멸치 단상을 덧붙인다. “빛을 좋아하는 것들은 겁이 많고 착하다. 그래서 그러겠지만 살아 있을 때 보면 정말 작고 예쁘다.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옛사람들이 행어(行魚)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이렇게 정지해있는 것들. 제각각 대가리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생의 마지막 표정을 이 애들처럼 적나라하게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51쪽)



 바다와 술, 다음에 눈물이 온다. 다 액체다. 우리도 액체에서 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는 종족인 것이다. “우리는 신(神)을 닮았다, 고 믿을 만한 수도자가 말했다. 우리가 눈물의 종족이듯, 그 말에 따르면 이 푸른 물방울 행성은 신의 눈물방울일 가능성이 높다. 신도 고달팠으리라. 외로웠으리라. 힘들게 세상을 꾸려놓기는 했는데 버겁기도 하고, 막상 그래놓고 보니 울컥하기도 해서, 다른 도리가 없었어, 도리질 치다가 글썽, 한 방울 흘러내린 것.” (19~20쪽)



 오늘도 거문도 바닷가에서 독한 노을을 응시하며 술잔을 들고 있을 한 작가에게 브라질 가수 엘리제테 카르도소의 권주가를 보낸다. “난 마셔요, 그럼요. 난 살았거든요. 안 마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죽어간답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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