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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 인터뷰] "알래스카 대자연서 묻다, 삶의 끝은 어디"

중앙일보 2014.08.16 00:34 종합 21면 지면보기
아버지의 자살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집 『자살의 전설』로 주목받은 미국 작가 데이비드 밴. “아버지를 더 잘 대해주지 못한 데 대한 속죄의 마음 등을 담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아르테

320쪽, 1만3000원




문학은 기본적으로 상처(傷處)의 기록이다. 고통의 토양에서 성장하는 나무다. 우리에겐 낯선 미국 작가 데이비드 밴(48)은 그런 문학론에 100% 동의할 게 분명하다. 치과의사였지만 통제불능이던 그의 아버지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외도를 일삼다 두 번째 결혼마저 파경 지경에 이르자 권총 자살을 한다. 그것도 두 번째 부인(밴에게는 계모)과 전화 통화하며 총소리를 들려주려는 의도였다.



 끔찍한 충격을 받은 열세 살 밴은 20대 초반부터 아버지의 자살을 소설로 새기기 시작했다. 무려 10년 만에 탈고한 그의 첫 작품집이 이 책이다. 프랑스·미국 등에서 12개의 문학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실제와 달리 소설 속에서는 아들이 자살한다. 알래스카의 외딴섬에서 단둘이 살다 ‘사고’와 맞닥뜨린 아버지는 아들의 시체를 문명 세계로 가져가기 위해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한다. 아버지에 대한 밴의, 문학을 통한 상상적 복수다.



 거친 알래스카의 대자연 앞에서 생존에 몸부림치는 ‘세상 끝 부자(父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설은 코맥 매카시의 장편 『로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아들의 자살을 통해 가족애의 한계, 존재의 화해 불가능성 등을 건드려 보다 복합적이다. 최근 한국에 들어와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고 있는 작가를 14일 만났다.



 - 껄끄러운 개인사를 소설에 담았다.



 “소설 배경인 알래스카는 신화적인 공간이다. 거대한 숲 안에 들어서면 내면의 공포와 희망이 튀어나온다. 곰과 늑대 등이 실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거울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낚는 핼리벗(대형 광어)이라는 물고기는 인생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처음에는 정상적인 물고기였다가 사춘기를 만나 성(性)에 눈뜨면 눈이 한쪽으로 몰려 결국 괴물 같은 물고기가 된다. 내 아버지가 그런 격이었다.”



 - 결국 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한 소설 아닌가.



 “맞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자살 당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는 인생의 어떤 순간, 어떤 결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근본적으로 미스터리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미스터리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가까이 다가가 볼 뿐이다.”



 - 해결 가망도 없이 왜 과거를 불러내나.



 “아버지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경험하려는 것이다. 인생은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수천 개의 의미 없는 습관으로 이뤄졌다. 반면 허구의 세계에서는 삶의 조각이 서로 아귀가 맞고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뭔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서 하지 않나.”



 - 소설에서는 아들이 자살하는데.



 “글쓰기에는 무의식이 작용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원래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아들이 자살하는 대목을 나도 모르게 쓰면서 소설을 망칠게 될까 걱정도 됐다. 써놓고 보니 아들을 자살시킬 수밖에 없는 무의식의 패턴 같은 게 작품 전체에서 느껴졌다. 그러니 소설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밖에. 놀라웠고 흥분됐다.”



 - 미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인기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5000부, 프랑스에서는 20만 부가 팔렸다. 미국 독자는 유치하다. 미국이 최고고, 군사력도 최강이라는, 이제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닌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비극을 읽지 않는다. 정말 바보 같은 문화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 한복판에 작가들을 위한 이런 레지던시(창작공간)가 있다는 점이 놀랍다. 좋은 징조다.”



 밴은 한국에 한 달 가량 머문다. 25일 오후 3시 서울대 인문대 신양관 국제회의실 301호에서 독자와도 만난다. 참가 문의 031-955-2135.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쓰는 데 10년, 출판사 구하는 데 12년



데이비드 밴은 벼락스타다. 『자살의 전설』을 다 쓰고서도 12년 동안 출판사를 구하지 못했었다. 결국 작은 문학상에 공모했고, 당선돼 책으로 나오자 뉴욕타임스가 전면을 할애해 리뷰한 게 계기가 돼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게 됐다.



 밴은 “집필에 총 10년이 걸렸지만 실제 『자살의 전설』에 실린 6개 중·단편은 굉장히 짧은 시간에 썼다”고 했다. 시행착오가 그만큼 길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글쓰기 방식이 바뀌었다. 그는 학부(스탠퍼드)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몇 년간 불교 명상수행도 했다. “글쓰기와 무의식의 관계를 깨닫게 된 후 명상을 하는 식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전날 써놓은 20∼30쪽을 한 시간 가량 읽고 마음을 집중한 후 손 가는 대로 다음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다. 무얼 어떻게 쓸지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오전에 규칙적으로 쓴다. “글쓰기가 명상수행을 대체한 매일매일의 수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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