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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보수 이야기] 경제민주화의 짐을 덜어야 한다

중앙일보 2014.08.16 00:11 종합 25면 지면보기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이번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내놓은 일련의 경기부양책들에선 절박함이 묻어난다. 말이 좋아서 부양책이지, 장기적으로 경제의 건강을 해치고 단기적으로도 효력이 확실치 않은 정책들이 많다. 역설적으로 그런 절박함이 마음에 닿는다.



 지금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경제 활력을 높이는 정책들의 입법을 서두른다. 경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큰 그림은 아직 내놓지 않았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은 분명히 읽힌다. 하긴 큰 그림을 내놓으려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방안을 먼저 생각해야 하니 정치적으로 어려운 면도 있다. 지금 우리 풍토에서 막강한 노동조합에 맞서 노동시장을 개선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나오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경제활성화 정책은 실행이 무척 어렵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입법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데, 야당은 경제활성화 정책에 우호적이지 않다.



 결국 정부는 힘들고 더딘 여야 협상을 통해 뜻을 이뤄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법안들과 야당이 절실히 원하는 법안들이 함께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부쩍 커졌다.



 야당이 원하는 법안들은 대체로 경제민주화 법안이어서 기업들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시도한다. 경제민주화가 박 대통령의 공약이라서, 여당이 발의한 것들도 여럿이다. 이런 사정은 정부로선 곤혹스럽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들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하려는데, 더욱 엄격한 규제들을 품은 법률들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새삼 성찰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모든 구성원이 같은 권리를 지니고 사회적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권력은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이 독점한다. 즉 민주주의의 핵심은 기회의 평등이다.



 시장경제에선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므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게다가 정치와는 달리 경제활동의 이익을 누가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민주적인 시장경제를 ‘민주화’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수가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이중적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게 된다. 그래서 시장경제의 장점들이 훼손되고 명령경제의 특질들은 짙어져서 경제가 비효율적으로 된다.



 역사적으로, 경제민주화는 ‘부의 평등화(equalization of wealth)’를 뜻했다. 노동가치설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사회주의 사회의 청사진이었다. 노동가치설은 오래전에 폐기됐고 사회주의도 파산했는데, 그렇게 낡은 개념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번창해 온 우리 사회에서 부활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역설적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우파 정당의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면서 이념적 지형이 헝클어졌다. 이어 박 대통령이 그 공약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나서자, 경제정책은 방향을 잃었고 시장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침내 박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용히 경제민주화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한 번 운동량을 얻은 정책은 멈추기 어렵다.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기구들이 있고 거기서 만들어진 법안들이 국회의 입법 절차를 마쳤거나 밟고 있다. 만일 국회에서 심의하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모두 통과되면, 우리 경제는 해를 입을 것이다. 모두 재산권을 허무는 법안들이라, 그 해악은 근본적이고 지속적일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의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경제민주화가 잘못된 공약인 이유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경제민주화의 명분 아래 추진된 법안들이 우리 경제에 해로운 사정을 소상히 알리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은 물론 선뜻 고르기 어려운 길이다. 주요 공약을 명시적으로 버리기보다는 지금처럼 그냥 시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훨씬 편하다. 국민의 질책과 야당의 거센 비난을 자초한다는 반론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야당과 타협해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시행되도록 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크게 해로운 상황을 용인하는 일이다. 반면에 박 대통령이 절박한 사정을 국민에게 호소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 될 것이다. 그런 호소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면, 국정을 운영할 정치적 자산도 단숨에 늘어날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들을 국회가 빨리 처리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그러나 비우호적인 야당의 동의를 얻으려면, 보다 큰 추진력이 필요하다.



 큰 새는 날아오르기 어렵다. 그래서 도움닫기를 할 처지가 못 되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이제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짐을 내려놓고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놓는 방안마다 현실성이 없다는 냉소의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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