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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공적연금 개혁

중앙일보 2014.08.16 00:11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한국인의 삶에서 노후대책은 큰 불안요인 중의 하나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농촌인구가 전체인구의 약 80%를 차지했다. 농업의 기반은 땅이고, 농업사회는 대대로 한 마을에 오래 정착해 사는 것이다. 농부가 늙으면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땅과 곳간의 열쇠를 물려받아 경작을 이어가고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양하며 살아간다. 땅과 자식이 노후대책이었던 셈이다.



 지난 반세기 이 땅에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농촌인구가 대거 도시로 이주하고 삶의 기반이 땅에서 공장, 회사로 바뀌면서 한국인의 삶의 형태는 빠르게 변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55세가 정년으로 정해지고 직장을 떠날 때 퇴직금을 받고 도시에서 노후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70년 당시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2세, 남성의 평균수명이 58.6세였으므로 이 제도는 그런대로 합리적인 제도였다. 퇴직 후 남은 생애가 길지 않았고 시중금리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80세가 넘고 금리가 지극히 낮은 지금, 퇴직금제도는 더 이상 적절한 노후대책이 되지 못한다.



 독일이 연금제도를 도입한 것이 비스마르크 시대인 1889년이다. 유럽에서도 산업화와 도시화는 삶의 형태를 바꿨고 이에 대한 대책도 빨리 나온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많은 노인은 대책 없는 노후를 맞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네 배가 넘고 전체 자살률이 최고에 이르는 주요인이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불안과 두려움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주요인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가운데 연금제도의 발전이 이를 따라가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철희 서울대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년기소득 대비 노후소득 대체율은 70세의 경우 40%로 미국의 70~80%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OECD 국가들에서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평균 63.6%이나 우리의 경우 사적 연금을 포함해 45~50%에 그치고 있다. 연금이 노후생활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중년을 넘어선 가계들은 빚은 많고 소득은 늘지 않으며 노후대책은 불비하니 소비와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소득 대체율이 높은 것이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이다. 그렇지만 이들도 외국에 비하면 높다 할 수 없다. 30년 재직 기준으로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의 퇴직 시 소득대체율은 주요 선진국들보다 10% 이상씩 낮다(주요국 공무원의 퇴직소득보장제도, 송인보 2012).



 군인·공무원 연금의 적자가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합리적 방향의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윤 일병 사건, 관피아 논란으로 군이나 공무원 사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높아졌을 때 연금 지급률을 깎아 적자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좋은 접근방식이라 할 수 없다. 군 기강 해이와 병영 내 폭력 문제는 군 인사와 교육에 엄정함을 세우고 병영 내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 관피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오히려 공무원들이 재직 중이나 퇴직 후 딴눈 팔지 않도록 연금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맞다.



 OECD 보고서(Government at a Glance, OECD 2011)를 보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의 노후대책에 여전히 소홀함을 보여주고 있다. 총급여 중 고용주(국가)의 연금기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1%로서 OECD 평균인 16%의 절반에도 못 미쳐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만약 국가와 공무원이 기여금을 늘린다면 지금의 지급률을 깎지 않고도 연금의 적자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적자보전을 위해 1조9000억원의 예산부담이 있었는데 정부의 기여금을 10%로 늘리면 연 약 1조5000억원의 추가예산이 들어 결국 예산을 적자보전에 쓰느냐 기여금 증가에 쓰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이를 단순히 ‘혈세로 공무원연금 적자 메운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국민들 속은 좀 시원해질지 모르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장기적이며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금제도의 강화 없이 한국인 삶의 안정과 행복을 도모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은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제도의 확대, 공적연금 체계의 개편 등으로 풀어가야지 연금지급률을 깎아 해결하려는 것은 최선의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유능한 인재들을 군과 정부로 끌어들여 이들이 본분의 역할에 충실케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목표 중 하나다. 정부나 국회가 국가정책과 제도에 대해 보다 장기적, 근본적 관점에서 개선책을 찾아나가기를 기대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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