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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원' 중국 영공 첫 통과 … 시진핑에게 "신의 축복을"

중앙일보 2014.08.15 02:03 종합 2면 지면보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전세기 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기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있다. 교황은 순직한 기자를 위해 30초간 기도했다. [AP=뉴시스]



고정애 특파원, 전세기 동승기
'단교 63년' 중국 상공서 전문 보내
가톨릭계 "시 주석 답변 땐 기적"

14일 교황 전세기에서 본지 고정애 특파원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미 가톨릭 전문 통신사 CNS 폴 해링 기자]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세기 ‘셰퍼드 원(Shepherd One 목자 1호기)’이 가톨릭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국 영공을 통과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발해 서울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거친 10개국 중 하나다. 영공 통과 국가의 지도자에게 축복 메시지를 전하는 전례에 따라 교황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문(電文)을 보내 “중국 영공에 들어가며 각하(your excellency)와 각하의 국민을 축복하고, 중국에 평화와 안녕을 위한 신의 축복이 내리길 간구합니다”고 기원했다.



영공을 통과한 다른 9개국 정상에게 보낸 메시지와 비슷했지만 바티칸 기자들은 “냉랭했던 바티칸과 중국 관계를 감안하면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51년 중국이 바티칸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 이후 양측의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는 관변 단체인 ‘천주교애국회’를 설립, 교황청의 주교 임명을 내정 간섭이라고 거부하고 자체 주교를 선출한다. 바티칸이 대만을 인정하는 것도 갈등 요인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교황에게 영공을 개방하고 교황이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관계 정상화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내 가톨릭 전문가인 베르나르도 셀레브레라 신부는 “이것은 화해의 조짐이 분명하다”며 “시 주석이 교황 메시지에 답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교황은 로마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30분간 기자들과 만났다. 기자회견 도중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 연배가 지긋한 기자들은 교황과 포옹했다. 그의 얼굴을 만지는 이도 있었다. 교황은 기자들의 셀카 요구에도 흔쾌히 응했다.



 교황이 기자석을 찾은 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비행기가 이륙한 지 42분 지나서였다. 교황을 상징하는 흰색 수단을 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70여 명의 기자와 눈인사부터 나눴다. 마이크를 먼저 잡은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한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주요 언론사를 대표하는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금 전 동료가 알려줬는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AP통신의 이탈리아인 사진기자 시모네 카밀리가 숨졌다”며 “경찰 3명이 폭발하지 않은 미사일을 해체하는 과정을 취재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던 교황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바로 그때였다. 처음 소식을 들은 듯했다. 그는 콧등을 찡그렸다. 손으로 얼굴을 덮고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이어 교황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롬바르디 신부의 얘기를 듣고 나니 제안을 하나 해야겠다. 카밀리를 위해 침묵 속에서 기도하자. 여러분 중 한 명이 오늘 일하다 숨졌다”고 했다. 그러곤 바로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도 따라 했다. 30초간 기내엔 엔진 소리만 울렸다.



 고개를 든 그는 기자들에게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하다. 또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탈리아어로 ‘감사하다’는 뜻의 ‘그라치에(grazie)’만 여섯 번 말했다. 그러곤 한국 순방을 두곤 “여행(여유 있다는 의미)이 되진 않을 거다.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여름 날씨란 게 일하기 좋지 않다. 덥고 습하다”고 했다. 교황은 4박5일 방한 기간 중 20개 일정을 소화한다. 하루에 네 개꼴인데 한창 일할 나이의 국가 정상에게도 벅찬 수준이다. 게다가 서울·대전·음성·서산을 오가야 한다.



 교황은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여러분의 말이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결속하도록 하는 데 늘 도움이 된다. (그런 만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지 않은 채 “지금 벌어진 일들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평화의 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교황은 “서울에서 (로마로) 돌아갈 때 다니엘의 사자굴로 들어갈 것”이라며 “그래도 사자들이 물진 않겠죠”라고 했다. 구약성서의 ‘다니엘서(6장 2~29절)’에서 예언자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천사의 도움으로 무사하게 나왔다는 얘기를 인용하며 서울을 떠나 로마로 향하는 기내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다니엘은 곧 교황, 사자들은 기자란 비유였다. 기자들은 비유를 알아채고 박장대소했다.



 교황은 3~4분간 발언한 뒤 72명의 기자와 일일이 인사했다. 아는 기자는 아는 기자대로, 모르는 기자는 모르는 기자대로 세상에 교황과 악수하는 기자 단 두 명만 있는 듯 교황은 그 순간에 집중했다. 눈을 마주치고 악수를 하는 건 물론이고, 때론 기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말 그대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때론 크게 웃기도, 때론 작게 웃기도 했다. 호기심이 동한 표정을 짓기도,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그가 머문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그가 다녀간 후 기자들은 오랫동안 부산했다. 그의 말을 재차 확인하고 기사로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전세기 안의 풍경이었다. 바티칸에 오래 출입한 기자들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 때는 안 그랬다”고 말했다.



 한편 기내식은 이탈리아 국적기답게 이탈리아식이었다. 출발하는 날 오후에 제공된 저녁엔 애피타이저와 고기·치즈를 채운 원통형 파스타인 카넬로니가 나온 뒤 메인 코스로 쇠고기 버섯찜, 마지막으로 디저트가 제공됐다. 아침엔 치즈와 크루아상, 요구르트와 과일, 그리고 남티롤에서 나오는 햄의 일종인 알토 아디제가 제공됐다. 비즈니스석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식단이다. 교황에게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메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수행기자단= 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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