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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요리사도 없이 … 허름한 구두, 철제 십자가

중앙일보 2014.08.15 01:56 종합 5면 지면보기
14일 교황이 타고 온 알리탈리아항공 전세기에 태극기와 바티칸국기가 걸려 있다. [박종근 기자]
14일 오전 10시16분.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알리탈리아항공 전세기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일찍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태극기와 바티칸기를 나란히 내건 전세기는 활주로를 천천히 돌아 붉은 카펫이 깔린 하차 계단 앞에 멈춰 섰다.


'빈자의 대부' 교황 방한 이모저모

 화려한 환영식도, 성대한 인파도 없었다. 30여 명의 환영단이 전부였다. 오전 10시35분 문이 열리자 흰색 복장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였다. 주한교황청 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계단 위로 올라가 교황을 맞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왔다. 이전의 교황들은 해외 방문 때마다 교황의 상징인 황금 목걸이를 하고 붉은 구두를 신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낡고 허름한 검은색 구두가 비쳤다. 오른손으론 계단 손잡이를 잡았다. 몸이 불편한 듯 왼손은 다리 위에 올렸지만 이내 인자한 미소가 번졌다. 교황은 ‘빈자(貧者)의 대부’라는 별명처럼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한국 땅을 밟았다. 1984년과 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의 방한이었다.



 교황은 소박했다. 타고 온 전세기부터 검소했다. 교황은 이번 방한에 알리탈리아항공의 에어버스 330기를 이용했다. 일반 여객기로 사용되는 비행기를 내부 개조 없이 이용해 기내에 별도 집무공간도 없다. 게다가 좌석도 일등석이 아니었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비즈니스석이다. 해당 여객기에는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내에서의 식사 역시 소박했다. 교황은 13일 저녁과 14일 아침 식사 두 끼 모두 수행원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 기내 첫 식사는 이탈리아 음식인 라자냐와 쇠고기버섯찜 등이었다. 한국 도착 직전에 먹은 아침식사에는 치즈와 크루아상, 요구르트 등이 메뉴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린 교황은 영접 나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첫걸음을 내딛기 전 한국 땅에 입맞춤을 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세리머니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악수를 청하며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라고 물었다. 이어 “비엔베니도 아 코레아 수 산티다드(Bienvenido a Corea Su Santidad·교황님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했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교황(아르헨티나 출신)에 대한 예우였다. 박 대통령은 “교황님을 모시게 돼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방한을 계기로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한다.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곤 “(대통령의 바람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겠다”고 했다.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졌다. 환영객들과 인사를 마친 교황은 검은색 ‘쏘울’ 차량에 올랐다. “작은 차를 타겠다”는 교황의 뜻에 따라 결정된 ‘포프모빌(교황의 차량)’이다. 역시 교황 뜻에 따라 방탄 기능도 탑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또다시 “노스 베모스 루에고(Nos vemos luego·나중에 뵙겠습니다)”라고 스페인어 인사를 건넸다. 교황은 창문을 내려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교황은 곧바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교황청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대사관 직원 및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직원 식당에서 관계자 10여 명과 점심식사를 했다. 역시 보통사람들의 식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천주교 관계자는 “교황께서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할 수 있기 때문에 낯선 한국 음식 대신 이탈리아 현지 음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한 것으로 안다”며 “파스타와 스테이크 등이 식단에 올랐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저녁식사 역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방문을 마친 뒤 대사관으로 돌아와 간단한 양식 메뉴 위주로 했다.



 교황은 이번 방한에 전속 요리사도 따로 대동하지 않았다. 지방 일정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식사를 주한교황청 대사관 내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예정이다. 교황은 방한 일정 중 모두 두 차례 외부 식사를 하게 된다. 15일 대전 가톨릭대에서 아시아 청년 대표들과 갖는 첫 공식 오찬에는 숯불갈비와 갈비탕 등이 메뉴에 오를 예정이다. 17일 충남 서산 해미순교 성지에서 아시아 주교 90여 명과 함께하는 만찬에는 한우등심구이와 낙지죽 등이 제공된다.



 방한기간 중 교황이 묵는 숙소는 특급호텔이 아닌 주한교황청 대사관이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교황청 대사관은 지은 지 50년이 넘은 2층 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교황은 주한교황대사가 쓰는 20㎡(약 6평) 남짓한 대사관 2층 방을 나흘간 숙소로 사용할 예정이다. 당초 가구와 집기 등을 새로 들여놓을 계획이었지만 교황이 “주한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평소에 쓰던 가구를 그대로 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대사관에 따르면 숙소 내부는 침대와 옷장, 탁자 등 최소한의 가구만 갖춘 모습으로 전해졌다. 이 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84년과 89년 두 차례 왔을 때 지낸 곳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교황의 검소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대주교가 된 이후에도 대중교통을 애용하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평소에 차고 다니는 시계도 14년 전 출시된 50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 일정도 검소함 자체였다.



글=고석승·강태화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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