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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 교황을 맞으며] 뚜벅뚜벅 사람들 속으로 아주 특별한 분이 오셨다

중앙일보 2014.08.15 01:47 종합 8면 지면보기
아침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알리탈리아 항공 전세기에서 이 땅에 발을 딛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보았다. 그가 이 땅에 와 처음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서 잠깐 숨죽였다. 열한 시간이라는 비행여정에도 그는 피곤한 기색 없이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트랩을 내려왔다. 내가 정확히 들은 첫 말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던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사건에 마음이 아픕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영접한 것 외에는 환영행사가 없어서 교황은 바로 아주 작은 차 검은 쏘울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주교 시절엔 손수 운전도 했다는 교황의 평소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이 이 땅에 도착해서도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지만 너무 간소해서 허탈하기도 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은 곳까지 신자이든 아니든 모두 끌어안아
100시간 안 되는 머무름이지만 갈등 낮아지기를, 희망 싹트기를

 몇 년 전에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만나는 폴란드 사람들은 어떤 대화에서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때야 나는 교황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로 종교에 관련된 분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도 어느 날부터 지금 우리 땅에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남미 출신이라는 것에도 놀랐는데 신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선출되자 “거의 지구 끝에서 교황을 찾아냈군요”라며 요즘 흔히 우리가 쓰는 말로 아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평화롭고 온화한 미소는 청빈 교황이라는 애칭과도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역대 교황들의 모습에서 웃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으므로 교황은 웃지 않는 사람이라고 각인되어 있던 나에게 그의 미소는 정말이지 아주 신선했다.



즉위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그는 곧 바로 교황청이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 ‘프란치스코야 쓰러져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라는 계시를 듣고 일생을 길 위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을 뒤따르는 듯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추하고 낡은 집에서 미사를 집전했고, 금기시하고 있던 여성 세족식을 했으며, 생일에 노숙자를 초대했고 전쟁과 폭력, 상처와 슬픔이 있는 곳에 곁에서 치유자로서 함께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 곁에, 감당 못할 상처를 입은 사람들 속에, 그가 있었으니 나도 그의 행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도 궁전이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상징적인 교황의 반지를 물려받아 손가락에 끼었다. 교황이면 꼭 신는 줄 알았던 빨간 구두가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신었던 신발을 계속 신었다. 어디에서나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눈 맞췄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경계가 없었다. 무슬림이나 불치병에 걸린 자, 약물중독자, 소년원에 있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고 닦아주었고 슬픔에 빠진 자들 곁에 머물렀으며 급기야 마피아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신과 교감하지 않는다”며 그들의 파문을 선고했다. 이런 말이 여기서 왜 쓰이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를 두고 좌파라고 하자 그는 마르크스주의는 200년밖에 되지 않았고 우리는 2000년이 되었다고 했다 한다. 통쾌했다. 그는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모두를 끌어안았다.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분’으로 우리를 일깨우며 지금 이 땅에 머물고 있다. 그가 머무는 날짜는 4박5일, 시간으로는 100시간이 채 안 되는 머묾이지만 그가 이 땅에 와 있다는 상징은 무궁무진하다.



 어제 무심코 지인에게 이 땅에 프란치스코가 왔으니 그가 무엇을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지금 32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유민이 아빠를 만나서 그의 발을 씻겨주고 닦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대로 두면 유민이 아빠가 죽을 것만 같다고.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암담해졌다. 더 이상의 죽음이 있어선 안 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만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되는 그런 식의 사회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자리에 갈등이 낮아지기를 바란다. 평화와 치유가 있기를. 그리하여 희망이 싹트기를.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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