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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초가집 140채 값 국채보상 성금 뺏어가

중앙일보 2014.08.15 01:29 종합 13면 지면보기
1900년대 초반 국채보상운동으로 모은 성금 일부를 일제 경찰이 가져갔음을 보여 주는 문서자료가 발견됐다. 일제의 방해로 운동이 중단된 뒤 모인 성금 일부를 일제가 가져갔으리란 추측은 있었으나 문서로 입증된 것은 처음이다.



 일제 강점기 사료를 수집해 온 조원경(57·경북 경산시 하양읍·사진) 목사는 14일 “1911년 일본인 대구 경찰서장이 국채보상운동 성금을 가져가면서 써 준 영수증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영수증은 오래전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에 나왔다. 가로 33.5㎝, 세로 24.3㎝ 크기의 영수증에는 ‘7279엔(円·‘원’이라는 뜻) 94전 국채보상갹금(國債報償醵金) 제출분을 받아 둔다’는 내용이 한자로 적혀 있다. 당시 한 채에 50원이었던 대구 초가집 140여 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받은 날짜는 ‘메이지(明治) 44년 5월 26일’, 영수인은 ‘대구경찰서장 경부(警部) 안도 세이지로(安藤正次郞)’로 돼 있다. ‘경부’는 지금의 경감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누구에게서 받았는지는 기록돼 있지 않다. 조 목사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구 총본부에서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국채보상운동으로 모은 성금까지 가져갔음을 보여주는 영수증. [프리랜서 공정식]
 국채보상운동을 연구해 온 김영호(73) 전 경북대 교수는 “성금 일부가 일제 통감부에 흘러 들어갔으리란 추측을 사실로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1907년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은 14만3542원을 모은 뒤 일제의 방해로 중단됐다. 모은 돈 상당 부분은 나중에 학교를 세우는 데 쓰였으나 전체 자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 경찰이 강제로 돈을 빼앗지 않고 영수증을 써 준 데 대해 김 교수는 “운동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서 영수증을 써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 목사는 “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성금 반환 청구소송을 내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송의호 기자



◆국채보상운동=1900년대 초반 일제는 조선에 계속 돈을 빌려 줬다. 재정부터 일제에 예속시키려는 의도였다. 1907년에는 일본에 진 빚이 1300만원에 이르렀다. 그러자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 등이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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