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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방한 교황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 통해 입국

중앙일보 2014.08.14 11:12
14일 오전 서울 성남공항. 활짝 웃으며 비행기에서 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며 많은 국민은 30년 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로 30년 전인 1984년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입맞추며 “순교자의 땅”이라고 말하던 순간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당시 ‘비바 파파(교황님 만세)’ 열기에 휩쌓였던 한국의 모습을 다시 살펴봤다.



84년 5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가 영접했다. 환영식은 국가 원수에 준하되, 종교 의식을 가미한 형태로 진행됐다. 환영식단은 붉은 카네이션과 장미로 장식, 교황의 흰색 수단 및 모자와 조화를 이뤘다. 미션 스쿨인 계성여고 합창단 600여명이 그리운 금강산, 울산아가씨 등 우리 가곡과 이땅에 빛을, 그리스도의 승리 등 천주교 선교 200주년 기념곡을 번갈아 합창했다. 다른 국빈 영접 때와는 달리 부인을 대동한 인사들은 없었다. 교황을 환영하는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당시 교황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절두산 성지였다. 성지 언덕길 500여m에는 붉은 융단이 깔렸다. 김정희씨 등 대건회 회원 7명이 김대건 성인의 모습 재현을 위해 한복에 갓까지 쓰고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는 1년 전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서석준 전 부총리의 부인 유수경씨 등 미망인 5명이 초대됐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이들을 소개하자 교황은 “아, 랭군”이라고 작게 이야기하더니 십자가가 달린 흰색 묵주를 미망인 한명 한명의 손에 쥐어주며 눈을 감고 강복했다.



곧이어 청와대를 찾아 전 대통령과 회담한 뒤 교황은 금· 은·동으로 만든 교황 메달 3개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을 선물했다. 전 대통령은 설악산을 그린 동양화 1점을 선물했다. 이어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에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교수식당에서 주교단과 함께 한국에서의 첫 만찬을 즐겼다. 메뉴는 가톨릭 신자 호텔 요리사 5명이 한 달 가까이 준비한 것이었다. 연어에 밀가루를 발라 튀기고, 야채수프와 구운 감자를 곁들였다. 후추나 파처럼 자극적인 양념과 식재료는 사용하지 않았고, 특별 제조한 백포도주를 함께 냈다.



이튿날인 4일 교황은 광주를 찾았다. 사실 광주행은 당국에서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꼭 가야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혀 성사된 것이었다. 당시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회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장익 주교는 최근 교황방한준비위원회가 공개한 동영상 인터뷰에서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 사태와 당시 한국 젊은이들의 상황 등 세세한 자료를 엄청나게 요구하고 꼼꼼히 검토했다. 방한 의미, 가장 먼저 갈 장소를 고민하던 교황은 광주를 가겠다고 결정했다. 공항에서 시내를 빗겨 가는 방법도 있다고 했는데, 교황이 도청 앞으로 해서 금남로로 가야겠다고 했다. 우리 당국은 펄펄 뛰었다. 5·18 항쟁의 상처가 아직 생생할 때인데…. 하지만 교황이 우겨서 결국 가게 됐다. 모든 것이 본인 결정이었다.”



교황은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성인입교예식 등 화해의 날 미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근래의 여러 비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에 아픔을 주는 깊은 상처가 났고,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특히 광주 출신 여러분의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화해의 은혜가 내려진 것”이라며 치유의 메시지를 건넸다.



뒤이어 헬기를 이용해 소록도로 이동, 한센인들을 만나 함께 기도했다. 소록도 역시 정부가 방문을 말리던 곳이었다. 대한민국에 자랑할 만한 기업체와 산업 현장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런 곳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제시대 때부터 탄압당한 한센인들의 아픔이 담긴 관련 자료 2000장을 모두 살펴본 뒤 소록도를 꼭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와 소록도에 가겠다는 교황의 결정에 크게 곤혹스러워했지만, 결국 청와대는 “그래도 교황청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해주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정부가 가장 신경쓴 부분은 역시 교황의 경호 문제였다. 특히 방한 직전에 미국과 이탈리아 정보당국에서 “국제 테러집단이 한국에서 교황 저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한국 정부에 전달, 초비상이 걸렸다. 치안 본부는 교황 방한기간 중 테러 기도 제보자에 대해선 간첩 신고에 준하는 보상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경찰은 행사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천주교 의식과 절차에 대한 교육도 사전에 받았다. 경호팀이 안전 점검을 위해 명동 성당 수녀원에 진입하겠다는 뜻을 밝혀 ‘금남의 집’에 최초로 남성이 들어가는지 주목받기도 했지만, 결국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점검 요원들을 여경으로 대체했다. 경찰은 교황 환영 인파를 노려 상경한 지방의 소매치기, 이른바 치기배 조직원들을 단속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번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산 준중형 승용차 쏘울을 타지만, 30년 전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탄용으로 특수제작된 랜드로버형 무개차를 탔다. 무게만 3t이 넘는 차량이었다. 보통 교황이 외국에 방문할 때 타는 차량은 해당 국가가 직접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바티칸에서 차량 2대를 공수해왔다. 수송 비용만 8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유지혜 기자·차준호 대학생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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