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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방한은 광복절 선물 … 약자 향한 미소 사랑합니다

중앙일보 2014.08.14 01:19 종합 5면 지면보기
나이를 이렇게 많이 먹었어도 늘 해방둥이로 불리며 어린이 마음으로 살고 있는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번 한국 방문이 아주 특별한 광복절 선물로 여겨져서 얼마나 기쁜지요! 날씨가 너무 더워 힘이 들어도 설레는 기다림에 웃음이 얼굴에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이 여름을 보내는 가운데 드디어 당신이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축복해 주신다고 생각하니 간밤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교황을 기다리며
세상 누구와도 좋은 친구 되고자
스스로 몸 낮추는 모습 닮고 싶어
한 손엔 백합 한 손엔 무궁화 들고
프란치스코, 당신을 환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실제로 보여 주고 계신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길 꺼리는 약자들을 향한 자비와 연민,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애정은 우리의 차가운 이기심과 편견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도 따뜻하게 열려 있는 당신의 그 보편적인 인간애를 닮고 싶습니다.



 교회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난해하거나 현학적으로 말하지 않고 가장 쉬운 일상의 언어로 알기 쉽게 말하는 당신의 지혜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실재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곧 천사 같은 순수주의, 상대주의의 독재, 공허한 미사여구,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 반역사적 근본주의, 선의가 없는 도덕주의, 지혜가 없는 지성주의 등을 거부하여야 합니다. 실재와 동떨어진 생각은 헛된 이상론과 유명론을 낳습니다’라고 『복음의 기쁨』 회칙에서 말씀하셨지요. 우리도 뜬구름 잡는 이론가가 아니라 삶의 땅에 뿌리내리고 현실을 통찰하고 예리하게 직시하는 당신의 지혜를 닮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먼저 기도를 부탁하시며 스스로를 항상 죄인으로 자처하시는 당신의 겸손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한 종교의 최고 리더로서도 권위를 내세우고 군림하는 자세보다는 인종과 종파를 넘어 누구 하고나 좋은 친구가 되고자 자신의 키를 낮추는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온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당신의 폭넓은 우애와 겸손을 닮고 싶습니다.



 정의를 위한 일이라면 체면에 매이거나 미루지 않고 결단을 내리는 당신의 자유롭고 결연한 의지와 단호함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바티칸 은행의 쇄신은 물론, 그릇된 길로 가는 성직자들을 엄중하게 다스리셨지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비겁함으로 정의의 편에 선뜻 서지 못하는 우리는 당신의 용기 있는 선택에 신선한 매력을 느낍니다. 미지근하지 않은 뜨거움과 단호함으로 성화의 길을 걷자는 당신의 초대에 우리도 기쁘게 동반하고 싶습니다.



 시와 음악과 축구를 좋아하고 한때는 우표 수집에도 열심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어린 소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멋지게 성장해 교황이 되어 동양의 이 작은 나라까지 오신 일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불볕더위에 두꺼운 제의를 입는 긴 미사 예절은 얼마나 더우실까, 방탄차를 안 타신다니 안전에 이상은 없는 걸까. 젊은이도 감당하기 어려운 닷새 동안의 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병이 나시면 어쩌나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이 고개를 들지만 이러한 마음도 다 기도 안에 봉헌하리라 다짐하며 하늘을 봅니다.



흰 구름이 아름답게 떠 있는 하늘길로 새처럼 날아오실 당신께 겸손되이 강복을 청하고 싶습니다. 순교자의 피로 꽃피운 한국교회를 축복하여 주십시오. 남북한으로 갈라져서 슬프고 아픈 우리나라와 겨레를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걸핏하면 자살을 생각하고 가장 사랑해야 할 이들이 서로를 좀 더 용서하고 배려하지 못해 불행한 사고도 많이 생기는 이 나라의 형제자매들에게 당신께서 어버이 마음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시고 넓고 따스한 기도의 품 안에 더 많이 품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정한 의미의 ‘프란치스코 효과’ ‘프란치스코 특수’는 외적인 행사에 있지 아니하고 당신을 뵙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탄생할 새로운 희망과 사랑에 있음을 당신의 그 백만불짜리 미소가 미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황님, 한 손에는 성모님의 백합을, 또 한 손에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들고 기도하며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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