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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고난 새겨진 서소문공원서 … 교황 '화해의 기도'

중앙일보 2014.08.14 01:17 종합 6면 지면보기
16일 광화문 시복식(諡福式)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8시55분 서소문역사공원을 먼저 찾는다.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행사다. ‘하느님의 종’, 복자로 선포하는 124인 중 27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기록이 남은 이들만 따져도 이곳에서 71인의 천주교 신자가 처형당했다. 국내 최대 순교지이고 세계적인 가톨릭 성지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칠패시장 인근은 형장으로 많이 쓰였다.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 국사범(國事犯)이 대상이었다. 교황이 광화문으로 바로 가지 않고 서소문공원을 출발점으로 삼은 건 한국 가톨릭에 대한 예우로 풀이된다.


[서울, 오늘의 기억 내일의 유산] ② 서울 순례길 28.42㎞
세계적 성지 옛 서소문 밖
성인 44위, 복자 27인 순교한 땅 16일 시복식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 가톨릭 심장 같은 길
명동성당서 출발 절두산 성지로 김범우 집터, 시구문 등 유적지
서울시 미래유산 곳곳에
대교구 교구청, 명동 주교관 별관 걸어서 15시간30분 힐링 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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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년 한국 가톨릭의 역사는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1784년 이승훈(1756~1801) 베드로가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때부터 한양 인구의 10분의 1인 1만 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당했다. 이들은 광화문 앞에 있는 형조와 종로의 포도청, 서대문 형장, 당고개(용산구 신계동), 새남터(이촌동), 절두산 등에서 숨져갔다. 이런 가톨릭의 성지를 이은 길이 ‘서울 순례길’이다.



서울 순례길을 축복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친서.
 조선 후기 천주교도들은 어떤 고초를 받고 어떻게 죽어갔을까. 그 단면을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84) 주교가 쓴 『나의 서울 감옥 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1878년 5월) 13일 월요일, 4시경에 형졸 하나가 목을 매는 데 쓰일 끈을 가져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문에다 걸어 뒀다. 곧 형이 곧 집행될 것이다. 누구 차례일까? 신자들이 끌려갈 때마다 마지막 사죄경(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기도문)을 읊을 준비를 했다. (중략) 만약 내 차례가 온다면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모든 성인들을 만날 수 있고 끝도 없는 영복을 누리리라.” 그는 프랑스로 송환돼 목숨을 건졌지만 그와 함께 있던 이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교황의 시복식은 가톨릭 박해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담고 있다.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안명옥 주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증거이자 선포”라고 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세종로에는 좌포도청(종로3가역 9번 출구 앞)과 우포도청(동아일보 사옥 앞)이 있었다. 천주교 초기 교회 모임을 이끌었던 김범우(?~1786)는 1785년 형조(刑曹·세종문화회관 앞 보도)로 끌려가 신문을 받고 유배돼 숨졌다. 포도청에서 고초를 겪다 죽어간 순교자들의 시신은 광희문(光熙門) 밖에 버려졌다. 광희문은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시구문(屍軀門)으로 쓰인 통로다.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 원종현(신부) 부위원장은 “조선 말 광화문 앞은 순교자를 탄압하던 국가시설이 모여 있던 곳으로 124위를 복자로 추대하는 건 종교 탄압에 대한 용서이자 화해”라고 설명했다.



 교황이 찾는 서소문역사공원이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갖는 상징성도 크다. 염수정 추기경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서소문 지역, 특히 서소문 밖 네거리는 처형지였지만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순교한 매우 중요한 성지”라며 “실제로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를 배출한 국내 최대이자 세계적 성지”라고 말했다. 이번 시복식에서 복자가 되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종(1760~1801·천주교 평신도 모임 회장)도 서소문 형장에서 숨을 거뒀다. 조광(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고려대 명예교수는 “교황이 서소문에서 광화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포도청과 형조에서 고초를 겪은 순교자들이 사형터로 끌려가던 바로 그 길”이라고 했다. 이 길은 지난해 9월 서울대교구가 지정한 천주교 순례길 중 ‘생명의 길’의 일부다.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서울 천주교 순례길을 세 구간(말씀·생명·일치)으로 나눠 지정했다. 명동성당에서 절두산 성지로 이어지는 총 28.42㎞ 코스다.



 서울 순례길은 한국 가톨릭의 역사다. 1코스 말씀의 길은 한국 천주교의 심장으로 불리는 명동성당에서 출발한다. 초기 신앙 모임이 시작된 김범우의 집터를 지나 종로성당, 부활절 미사가 최초로 봉헌된 가회동성당으로 이어진다. 첫 미사를 봉헌한 이는 한국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였다. 2코스는 최초의 성당인 가회동성당에서 시작해 서소문을 지나 약현성당에 이르는 길이다. 생명을 바친, 고초의 길인 셈이다. 세 개 코스 중 가장 길어 고난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3코스는 일치의 길로 명명됐다. 새남터·당고개·절두산 성지가 포함돼 있다.



 순례길 시작과 끝은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으로 채워진다. 1코스 시작점에선 1892년 완성된 서울대교구 교구청과 1920년에 지어진 석조 건물인 명동 주교관 별관을 만날 수 있다. 2코스 중간엔 65년 완성된 작은형제회 한국관구가 있다. 3코스 마지막엔 절두산 순례성당이 있다.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67년 완성된 건물로 이태희 건축가의 작품이다. 원종현 부위원장은 “광화문 시복식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언어를 일반화하면 자기희생, 솔선수범, 나눔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며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순교로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나눔을 통한 풍요야말로 현대 사회가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순례길 교황청 승인 추진=서울대교구는 지난해 지정한 성지 순례길 세 곳에 대한 교황청 승인을 추진 중이다. 교황청 승인을 받으면 세계적인 순례길로 인정을 받는다. 서울시와 중구·종로구는 가톨릭 미래유산에 대한 공원화와 관광벨트로 묶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일종의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국내 최대 순교 성지인 서소문역사공원 순교 성지를 조성하는 사업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서울 중구는 지난 3월 국유지인 서소문공원의 무상사용승인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8월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시작해 2017년 9월 완공한다. 총 사업비는 513억원으로 기념전시관, 추모 공간, 순례길이 조성된다.



◆서울시 미래유산=서울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건물과 기념물, 주요 인물·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와 생활사 등 유·무형의 것들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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