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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세계사 속의 한국

중앙일보 2014.08.14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아시아 대륙의 맨 끝에 자리 잡은 한반도는 19세기까지 세계사에 거의 등장조차 하지 않던 은둔의 나라였다. 당시만 해도 조선엔 중국과 일본이 세계의 전부이다시피 했으니까. 1853년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 네 척을 끌고 와 일본을 개국시키고, 1860년 영국이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이면서 아시아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조선은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암울하게 20세기를 맞았다. 잊혀진 나라, 패망한 나라는 해방을 맞았으나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됐고 그 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50년에 터진 한국전쟁은 세계정치 지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우선 영구히 군대를 가질 수 없었던 일본이 자위대로 재무장했고, 사분오열되어 있던 우파정당들이 55년 자유민주당으로 집결하여 37년 이상 장기 집권했다. 일본은 확실한 우익국가가 되었다. 패전국인 독일도 55년 일본과 같이 연방방위군(Bundeswehr)으로 재무장 하였다. 미국은 막 불기 시작한 반공 매카시 선풍에 한국전쟁이 기름을 부어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고 철저한 반공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정권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쇼 독재정권이어서 자유 진영, 공산 진영 모두의 배척을 받아 대사관이 쫓겨나고 유엔 가입도 거부당하는 등 외톨이 신세였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서방 진영은 재빨리 프랑코 정권을 자기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관계를 개설하고 유엔에도 가입시켜 주었다. 그런 정권이 75년까지 유지되었으니 어쨌든 세계 역사에 한반도가 큰 획을 그은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현대사를 크게 바꾼 것은 바로 88서울올림픽이다. 동구권 붕괴의 직접적인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사자인 옛 동구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정작 우리만 모르고 있다. 그들은 공산당 선전으로 한국이 거지 떼가 우글대는 나라, 비참하고 가난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이 TV로 중계되면서 놀랍도록 발전하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공산당 선전에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불평·불만에 부풀대로 부푼 동구권이라는 풍선을 터뜨린 바늘이었다는 얘기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1년 만에 동구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세계 역사를 바꾼 계기를 마련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한층 높아졌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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