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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황 방한, 동북아 평화의 계기 됐으면

중앙일보 2014.08.14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각수
전 주일대사
법무법인 세종 고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은 2000년 긴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수회 출신 첫 교황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이름을 자신의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프란치스코는 ‘빈자의 성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년5개월 동안 현대사회의 소외된 약자와 어둡고 낮은 곳에 눈높이를 맞추며 초기 교회의 모습을 충실히 실현했다. 권위를 버리고 다가가 소통하는 행보를 통해 그는 종교를 초월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7월 브라질과 올해 5월 중동을 방문한 후 세 번째 해외 방문국이자 아시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이번 방문은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참가와 조선시대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서 교황이 남길 메시지와 방한 활동은 한반도와 동북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2010년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략 환경은 매우 불안정하고 불투명해졌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이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랐고, 1위 미국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중국 부상에 따른 세력의 전환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지는 향후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직결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면서 다양한 군사도발로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북한 주민에 대해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는 대규모 조직적 인권침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내 관련국가들 간에 상호불신이 깊어져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첫째, 미·중 관계다. 미국은 중국이 기존의 국제질서를 존중하면서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으로 행동할지 불확실하게 보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방해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둘째, 중·일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은 일본이 보통국가를 추구하면서 주변국과 함께 중국을 포위하려 한다고 본다. 일본은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에서 보이는 위압적 행동에 비춰 수직적 중화질서를 재구축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셋째, 한·일 간에도 불신의 벽은 높다. 한국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우경화 정책에 반발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의 중국 경사 오해와 과거사피로증후군으로 혐한(嫌韓)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넷째, 남북관계에서도 한국은 북한이 경제발전을 내세우면서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북한은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동북아에서는 불행했던 20세기의 역사적 유산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또한 자신감을 회복한 국가와 자신감을 잃어 가는 국가 모두 배타적 민족주의의 유혹에 빠져 있다. 영토와 해양관할권 분쟁도 긴장의 씨앗이 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진정한 역사적 화해 없이는 평화기반을 구축할 수 없다. 화해를 위해서는 가해자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하고, 피해자도 이에 상응한 관용을 보여야 한다. 동북아에서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없으면 21세기 평화와 번영의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이를 구현할 지역체제는 구축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교황 방한은 이 지역의 모든 국가와 시민들에게 평화와 화해의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역할을 한 바 있다. 요르단에서 서안지구로 직행함으로써 이-팔 평화를 위해서는 2국가 제안의 실현이 필요함을 시사했고, 예정에 없이 분리장벽 앞에서 평화의 기도를 올려 평화의 절실함을 직접 호소했다. 그리고 타 종교인 2명을 순방에 동행케 함으로써 종교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외국 선교사 없이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세계 유일의 국가다. 2만여 명의 초기 신자들이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했다. 100년 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탐욕을 고발하고 동양평화 구현의 대의를 위해 순국했다. 25년 만의 세 번째 교황 방한을 맞아 우리는 이를 분단 극복과 동북아 평화 구축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온몸으로 부딪치는 용기와 희망을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유럽의 민주화와 냉전 와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물꼬를 트고 동북아 안정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와 같이 ‘미움, 다툼, 분열과 절망’이 있는 곳에 ‘사랑, 용서, 일치와 희망’의 믿음이 자리 잡아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무르익기를 기대해 본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법무법인 세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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