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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봉사상을 받은 신우담여사

중앙일보 1980.11.28 00:00 종합 5면 지면보기
『상을 받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앉아서 많이 울었어요. 19세에 결혼해서 25세에 혼자 된후 의지할 끄나불 하나없이 걸어온 지난날을 더듬어보니 새삼 눈물을 걷잡을수 없더군요.』

올해의 용신봉사상 수상자로 뽑혀 28일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8회 전국여성대회(여성단체 협의회주최)에서 상을 받은 신우담씨(61·전남영광군영광읍도동리104).

사재털어 농업기술학교·양로원 세워|25세에 남편과 사별, 불우이웃위해 일생을 바쳐

현재 고향 영광에서 77년 사재를털어 백화양로원을 열고 의지할곳없는 불우한 노인 15명을 손수 식사준비와 빨래까지 해가며 돌보고 있다.

안보 취약지구인 전남해안의 영광은 .해방후엔 공산당이 날뛰고 오늘날에도 북괴간첩이 출몰하는 곳. 해방직후 보전을 졸업하고 경찰관으로 활약하던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신씨는 뜻한바있어 광주 경찰전문학교에 1기로 입학, 47년에 졸업했다.

『3년간 목포경찰서에 근무하면서 순천·여수반란을 겪었어요. 6·25동란때 국민학교 4학년과 2학년이던 남매를포함, 시댁 12식구가 공산당에 학살당했어요.』

그후 절에들어가 5년간 수도를 하는등 기구한 사연끝에 불우한 사람을 돕는일에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는그는 유산 10여마지기땅을 근거로 배우지못하는 청소년을 위해 해롱농업기술학교를 세웠다. 운영비를 대기위해 밭을 매고, 누에를 치고 돼지를키웠다.

77년 해롱 중·고교로 정식인가가 나자 학교운영에서 손을 떼고 불우노인을 위한 양로원을 열었다.

『의지할곳 없어 거리를 떠도는, 모두들 기막힌 사연의 노인들을 수용해 처음에는 이웃도 「거지양로원」,「동냥아치양로원」이라고 쑤군거렸지만 지금은 모두들 도와주고 있습니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신씨는 상금(1백만원)을 비좁은 양로원 증축비용에 쓰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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