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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리모델링 … 끊긴 2층 길 이어 종묘 ~ 남산 걷는다

중앙일보 2014.08.13 01:07 종합 8면 지면보기
건축가 김수근의 1970년대 모습. [중앙포토]
서울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건물과 기념물, 주요 인물·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와 생활사 등 유·무형의 것들을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2012년 11월~2013년 7월 사이 9개월 동안 정치역사·산업노동·시민생활·도시관리·문화예술 등 5개 분야의 미래유산 368개를 선정했다. 중앙일보는 서울시와 함께 연중기획으로 미래유산을 소개한다. 첫 회로 현대 서울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서울, 오늘의 기억 내일의 유산] ① 김수근 건축의 재발견
김수근 50년 전 꿈 현실로
산업화 시대 상징하는 건축물 걷고 쇼핑 ‘도시 속 도시’로
역사 보존하며 도심 재생
서울역 고가도 녹지 보도화 철길로 끊긴 동·서축 연결
미래유산에 김씨 작품 20개
경동교회, 샘터·공간 사옥 … 301번 버스 투어 코스로

"한강에서 출발해 용산공원과 남산을 넘으면 세운상가의 공중 보행로가 나온다. 이를 따라 걸으면 종묘를 거쳐 북한산에 오른다. 그렇게 백두대간의 지류인 한북정맥과 만나게 된다.” 승효상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장은 세운상가 리모델링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도심의 동선이 획기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승효상
 세운상가는 산업화 시대 한국이 지은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다. 길이 1㎞의 상가는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 등 서울을 동서로 잇는 길을 모두 품고 있다. 1968년 완공된 세운상가엔 실내 골프연습장과 상가, 그리고 아파트와 수퍼마켓이 한 공간에 있다.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이고 30년 후 미래 도시의 삶을 담아냈다. 건물 양측에 약 10m 폭으로 설치된 2층 데크는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유모차를 끌고 쇼핑할 수 있는 공중보행로’로 설계한 것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 보행로는 이번 리모델링의 핵심이다. 승 위원장은 “1층 길과 2층 데크가 공유지이고, 대부분 보존돼 있기 때문에 이를 ‘입체 보행로’로 다듬는 작업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보존키로 한 중요한 이유는 건축물이 가진 잠재력 때문이다. 복원된 청계천으로부터 유동인구가 유입되기 쉽고, 명동·동대문 등 거대 상권과 접해 있다. 2㎞에 이르는 을지로 지하상가와도 맞닿아 있다. 세운상가와 청계천, 종로를 잇는 계단·엘리베이터·경사로가 설치된다. 끊어진 2층 데크를 연결하는 공사도 진행한다.



 상가를 채울 소프트웨어도 마련된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일부 단과대를 유치하고 홍대의 플리마켓 모델을 접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장지동 가든파이브로 이전했던 지역 산업을 다시 끌어오는 것도 논의하고 있다.



 세운상가가 한국 건축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지난 6월부터 열린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은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세운상가가 현대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소개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의 건축가들은 도시 재건을 목표로 메가 스트럭처(거대 건축물)를 기획했다. 공중가로(street in the air)와 쇼핑몰, 인공대지와 옥상정원을 갖춘 ‘도시 속의 도시’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갖춘 메가 스트럭처는 오직 한국에서만 실현됐고, 그 결과물이 세운상가였다.





 저명한 도시설계자 프랜시스코 사닌 미국 시러큐스대 교수는 “세운상가는 일개 건축물이 아닌 도시 시스템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한국관 큐레이터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한국사에 있어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시장이란 개발론자와 건축가 김수근이 이룬 압축성장의 기억을 담은 곳”이라고 했다.



 서울시 공공건축을 총괄 지휘하게 될 승 위원장은 세운상가 보존을 ‘서울의 척추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이 프로젝트는 그간 등한시됐던 현대의 유산을 미래의 가치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의 상징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창신·숭인지구처럼 세운상가에도 조만간 도심재생지원센터가 신설된다. 주민 요구를 수용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경제활성화를 위한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를 녹지 보행로로 바꿔 철길로 끊어진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하이라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산과 남산뿐 아니라 서소문역사공원 등 철길의 서쪽도 보행로로 연결된다. 김수근이 50년 전 꿈꾸었던, 공중-지상-지하가 연결된 ‘미래형 입체도시’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전면 재개발이 아닌 ‘보존과 재생’이 오히려 미래에 더 큰 가치로 연결된다는 게 미래유산 사업의 핵심 철학이다. 미래유산에 지정된 김수근의 작품은 세운상가를 포함해 20개에 이른다. 미적 가치를 인정받은 경동교회와 공간 사옥,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워커힐 힐탑 바와 자유센터, 남영동 대공분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안창모 교수는 “김수근은 건축이 도시와 어떻게 만나고, 건축이 어떻게 도시를 형성하는지 보여줬다. 서울은 그의 가치관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르코 미술관과 샘터 사옥의 1층은 보행자를 위한 통로로 설계됐다. 건축물이 보도 등 도시의 일부로 기능하게 한 것이다. 자유센터·힐탑 바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의 보편화를 가져왔다. 올림픽주경기장은 한국의 선(線)을 보여줄 뿐 아니라 ‘전쟁을 극복하고 성공한 대한민국’을 세계에 처음으로 소개한 국제무대로서 가치를 담고 있다.



◆어떻게 둘러볼까=미래유산에 20개 작품이 선정됐음에도 서울시엔 ‘김수근 투어 프로그램’이 아직 없다. 중앙일보는 김수근재단과 함께 ‘시내버스 301번(간선)’을 투어 수단으로 제시한다.



투어의 출발점은 남산이다. 남산을 걸으며 자유센터 등을 둘러보고 동대입구역에서 301번 버스를 탄다. 버스는 동대문 패션타운, 청계천 등을 거쳐 대학로로 이어진다. 경동교회를 만난 뒤 바로 옆에 있는 평양면옥에 들러도 좋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문화전을 감상한 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면 세운상가와 만난다. 대학로에 이르면 아르코 미술관과 샘터 사옥이 있다. 종묘와 창경궁을 걸어 공간 사옥까지 갈 수 있다.



◆김수근(1931~86)=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로 경기공립중학교-서울대-도쿄대에서 공부했다. 1960년 국회의사당 현상모집에 당선 됐다. 71년 미국 주간지 ‘타임’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소개됐다.



강인식·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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