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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순신이 우리를 위로한다

중앙일보 2014.08.13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
8월은 괴롭다. 휴가철이고, 광복절도 있어 쉬는 날이 많다. 그런데도 8월은 괴롭다. 일본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이 없다. 이번엔 야스쿠니신사가 도발했다. 신사 측은 11일 “한번 합사(한곳에서 제사를 지냄)된 제신(신사에 모신 신)을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야스쿠니신사엔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그런데 전범들은 처형 직후가 아닌 일본 정부의 법 개정 등을 거쳐 1978년에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의도적으로 전범의 국가 영웅화를 획책하고선 이제 와서 원칙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랴. 지난 5일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관련 기사가 오보였다고 밝히자 아베 정권은 기다렸다는 듯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고 나섰다. 손으로 해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수십 년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건 또 어떤가.



 일본은 400년 전에도 오만하고 무례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정유재란(1597년) 전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가 비밀편지 한 통을 입수한다. 그 편지에서 당시 일본의 최고 권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렇게 말한다.



 “길을 빌어 상국(명)에 통공(通貢)하려고 하나 조선이 허락하지 않으니, 그 무례함이 심하다. (중략) 한 번 전쟁하여 승부를 결정해야 하겠다.”



 내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데 싸움이라도 해서 밀고 들어오겠다는 무뢰배나 다름없다.



 이런 일본에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다 곧 좌절감을 느낀다. 좌절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 정부다. 도대체 우리 정부는 상대가 저렇게 무례한데 왜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못하느냐고, 왜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내지 못하느냐고.



 지금 총칼 들고 싸우자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안타까운 건 정부가 일본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맞다. 우리의 힘이 약한 게 원인이다. 약하니 얕보는 것이다. 전쟁이 없는 시대, 힘은 곧 경제력이다. 국방·외교의 힘도 결국 경제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조선·반도체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소니는 삼성전자의 기세에 뒷방 노인네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년의 장기불황을 겪었어도, 조선과 반도체 1등을 한국에 내줬어도 일본 경제는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장기불황에 몸살을 앓던 일본 경제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가 효험을 내면서다. 80년대 10배에서 최근 5배로 줄여 놨던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국내총생산 기준)가 다시 벌어질까 두려운 이유다.



 영화 ‘명량’의 흥행요인으로 이순신의 리더십을 꼽는다. 또 있다. 8월, 우리는 일본의 무례함에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그때 부활한 이순신이 우리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한다. 겨우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을 통쾌하게 쳐부수면서. 그런데 아차, 지금 우리를 지켜줄 12척의 군함은 어디 있나. 무엇으로 무례한 일본을 호통칠 것인가.



김준현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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