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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복합골절'의 한·일 관계

중앙일보 2014.08.13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일본 열도 남서쪽 규슈(九州) 섬의 후쿠오카(福岡)시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꼭 20년 전인 1994년 난생처음 일본 땅을 밟았는데, 그곳이 바로 후쿠오카였다. 1년간 규슈대학에서 연수를 하면서 정도 꽤 들었다. 대학 국제교류센터에서 미국·중국·인도·러시아·미얀마에서 온 학생들과 어울려 일본어를 배웠고, 엔고(円高)에 시달리면서도 가끔은 나카스 포장마차나 재수 학원들이 있어 생긴 별칭인 ‘불효자의 길’(오야후코 도오리)에 몰려가 한잔 하던 추억이 새롭다.



 지난주 후쿠오카를 다시 찾았다. 지난 7일부터 사흘간 열린 제22차 한·일포럼 멤버 자격이었다. 한·일포럼은 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가 경주 회담에서 합의해 발족한 양국 민간 대화모임이다. 올해는 두 나라 합쳐 60여 명이 참석했다. 현역 의원, 전직 관료, 재계·학계·언론계 인사들이 고루 포진했다. 굳이 전쟁이나 스포츠 경기에 어울리는 포진(布陣)이란 용어를 쓴 것은 몇몇 주제, 특히 과거사에 관해 넘거나 건널 수 없는 벽 또는 강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토론은 비공개에 부쳐졌다. 그 덕분에 서로 예의를 갖추면서도 할 말은 다 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복합골절. 유례없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표현한 이 말이 사흘 내내 공감을 샀다. 마침 일본 측 원로 인사 한 명이 다리 골절상으로 불편한 처지여서 더 화제였다. 뼈만 상하는 일반 골절과 달리 복합골절은 다른 신체 조직까지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고 양측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진단은 일치했는지 몰라도 골절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컸다. 내가 특히 놀란 것은 일본의 혐한(嫌韓) 기류가 대중영합적 주간지나 일부 누리꾼 차원을 넘어 일반인에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일본의 전직 외교관은 “일본은 무신경, 한국은 아마에(응석)가 문제”라고 말해 한국 측 참석자들을 씁쓸하게 했다. 반대로 4년 전인 2010년 8월 외무성 부대신(차관 격)으로서 당시 간 나오토 총리의 한·일병합 100주년 사과 담화문 작성에 관여했던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은 “사전에 역대 자민당 총리들의 양해를 구했으며, 아베 현 총리를 빼고는 모두 동의해주었다”며 “(정치적) 리스크를 무릅쓰고 그토록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사죄했는데도 한국 측은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마음에 품어둔 실망감을 드러냈다. “일·한 관계가 급속히 나빠진 것은 아베 총리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교토 정상회담(2011년 12월) 때부터”라는 일본 측 설명도 있었다. 지금 상황을 아베 총리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얘기다. 한 일본 교수는 “평범한 주부들까지 ‘한국(사람)은 도대체 뭔가요?’라고 묻는다.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복합골절은 외교 외에 다른 분야에까지 피해를 입힌다. 감염으로 상처가 덧나기도 쉽다. 일본 유수의 자동차 회사 중역은 “부산에서 만든 부품을 신속히 수입해 규슈에서 차를 만들고 있다. 올 연말부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 수출용 자동차를 부산에서 제작할 예정”이라면서 “그러나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이런 일들을 일본 내에 공개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지면 자칫 ‘한국에서 만드는 차’라는 소리(비판)가 나올까봐 걱정돼서”라는 이유였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내년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릴까. 참석자들은 한국에선 50주년보다 70주년에 더 의미를 둘 것이라고 예측했다. 양국 정부가 수교 50주년을 공식 기념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50주년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기념 행사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한국의 전직 고위 관료), “과잉기대도 낙담도 말고 겸허하게 시민 차원에서 맞이하자”(일본 국회의원)고들 지적했다.



 관계 악화의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한국이 과거에 비해 국력이 커졌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서 보듯이 급속히 보통국가화(化)하고 있다. 일본의 ‘사죄 피로증’도 한몫했을 것이다. 양국 지도자가 반일·반한 여론에 영향 받거나 거꾸로 활용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관계가 지금 바닥을 치고 있다면 나을 텐데,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실이 있더라’는 말이 있으니 걱정이다. 한·일 현안 중에는 ‘해결 대상’ 아닌 ‘관리 대상’이 많다는 것을 양국 리더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사안이 복잡할수록 벌레의 눈(worm’s-eye view)에서 벗어나 새의 눈(bird’s-eye view)으로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아쉽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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