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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영어가 뭐길래

중앙일보 2014.08.11 00:1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수진
국제부문 기자
2001년 가을,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휴가지 런던에 도착한 기자는 의기도 양양하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두 유 리시브 크레딧 카즈(Do you receive credit cards)?” (맞다. “신용카드 받아요?”의 직역이다.) 아르바이트생이 (당연히) 못 알아듣자 기자는 “세서미 스트리트(미국 어린이 방송)로 단련한 미국식 영어를 못 알아듣는군”이라 생각했다. 역시, 무식하면 오만하다. 다른 동사를 써야 함을 깨닫고 얼굴이 홍당무가 됐던 기억이 있다.



 굴욕의 고백을 하는 건 기자에게 ‘영어의 비법’을 묻는 분들이 있어서다. ‘토종’으로 영어신문에서 10년 가까이 일했으니 비법이 있겠지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비법은 없다. 비법 고민할 시간에 일단 부딪쳐 보는 뻔뻔함이 정답이다.



 비법에 목마르다는 건 ‘영어’라는 존재가 우리를 짓누르는 무게를 반증한다. 영어와 무관한 일을 해도 TOEIC 점수가 높으면 승진 고속도로를 타고, 프레젠테이션에서 영어 용어 섞어 주면 더 그럴듯해 보인다. “나 똑똑해”라고 외치고 싶은 광고 모델의 손엔 영어신문이 들려 있다(때론 거꾸로).



 반면 영어 구사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살기 참 편한 곳이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들은 자기들 실력을 뽐내느라 열심이고, 영어에 자신 없는 이들은 괜히 미안해하며 과잉 친절을 베푼다. 어떤 미국인 지인은 한국에서 14년을 살며 “고마워요” “안녕하세요”만 구사하고도 문제가 없었다는 게 자랑이었다.



 반대로 일본의 외국인들은 어떨까. 기자의 제한적 경험에 기댄 인상비평이지만 일본의 외국인들은 일본어 구사력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경우가 많았다. 도쿄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미국인은 일본어로 길을 물었고 관광지 가마쿠라(鎌倉) 식당의 프랑스인은 “정말 맛있네요”라고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나도 외국인이에요”라고 답하는 기자의 마음 한구석은 좀 쓰렸다.



 영어는 도구다. 잘 쓰면 좋지만 거기에 얽매여 괜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당당히 부딪치고 뻔뻔하게, 하지만 진지하게 배우면 된다. 한 고위 외교관은 “Today English little becomes(오늘 영어 좀 되네)”라고 농담하곤 했다. 능청을 부리는 이분의 업무상 영어 실력은 동북아 최고 수준이었다.



 여기서 잠깐. “신용카드 받아요?”라고 하려면 어떤 동사를 써야 했을까. e메일()로 답을 보내 주시는 선착순 세 분께 소정의 선물을 준비했다는 건 비밀이다.



전수진 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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