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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의 맛 우리 손맛으로 스크린에 담아요

중앙선데이 2014.08.09 01:14 387호 6면 지면보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를 이끄는 안재훈(45) 감독은 손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2D 애니메이션 작가다. 디즈니의 ‘겨울왕국’처럼 컴퓨터로 영상을 만드는 3D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부인 한혜진(44) 감독과 함께 만든 단편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TV시리즈 ‘아장 닷컴’(2001), 뮤직비디오 ‘관&운’(2004), 드라마 애니 ‘겨울연가’(2009), 극장용 장편 ‘소중한 날의 꿈’(2011) 등 다양한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리고 올해,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수채화 같은 영상으로 옮긴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2014)을 21일 극장 개봉한다. 6일 언론 시사회를 가진 안 감독을 만났다(한 감독은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고 안 감독이 전했다).

한국 단편소설 애니메이션 개봉하는 안재훈 감독

-왜 단편문학인가.
“어릴 적부터 문학소년이 꿈이었다. 언젠가는 문학을 갖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생각해 왔다. 요즘 교과서에서 우리 문학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다문화시대, 한류 등으로 문화의 외연은 넓어지는데 정작 우리 안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오던 가치는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뭘 보여주려 했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20~30년대 모습을 요즘 청소년들은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는 메밀꽃밭에 대한 표현이 과연 어떤 것인지, 또 식민지 시대의 경성이란 곳은 어떤 느낌인지 책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강원도 봉평을 여러 번 가보고 또 다양한 일제 강점기시절 사진 자료와 외국인 방문기를 구해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소설의 글맛을 우리 애니메이터들의 손맛으로 스크린에 담아내고 싶었다.”

-언제 기획한 것인가.
“1960~70년대 우리 삶의 모습을 담아낸 장편 ‘소중한 날의 꿈(이하 소꿈)’을 하기 전까지는 엄두도 못 냈다. 우리 관객이 우리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과연 관심이라도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소꿈'이 극장 개봉관 축소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전국을 돌며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를 하게 됐는데 2012년 무렵 확신하게 됐다. 우리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셨다는 어르신들이 너무나도 감동을 받으셨다고, 다른 작품도 빨리 만들어달라고 말씀해 주셨다.”

-부인인 한혜진 감독과는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나.
“나는 시나리오·캐릭터·연출·음악을, 한 감독은 콘티·레이아웃·배경·색깔을 맡는다. 역할 구분이 명확한 편이다.”

-외국인들이 스태프로 있다고 하던데.
“‘소꿈’ 이후 신기하게도 세계 곳곳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 2D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드니까 그런 것 같다. 레바논 사람인 패트릭 스페르는 2년 전부터 메일을 계속 보내오다가 어느 날 스튜디오로 들이닥쳐 일을 시작한 경우다. 인도에서 온 사람도 있고 미국이나 독일에서 유학한 한국 학생들도 제법 있다. 여기서 열심히 배우고 나가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 허브가 되고 있는 셈이다.”

-‘겨울왕국’의 대성공 때문에 창작 애니메이션계가 더 어렵지 않나.
“(그런 명성은) 100년 걸린 일이다. 우리의 제작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호들갑부터 떨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관객 눈높이에 맞춰가면서 계속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개봉 상황은.
“극장 잡기가 쉽지 않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전용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CGV에서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메가박스도 관심을 보였다. 40~50개 극장에서 시작할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소나기’ ‘무녀도’ ‘벙어리 삼룡’을 만들고 있다. 극장용으로 창작 애니메이션 ‘웃어요’(가제)와 김동화 선생님의 ‘황토빛 이야기’를 기획중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연필로 명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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