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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확 뒤집었다 판소리 새 길이 보였다

중앙선데이 2014.08.09 01:41 387호 14면 지면보기
“전통의 현대화를 꾀하느냐고요? 남들이 안 해 본 걸 하려는 것 뿐입니다.”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 예술감독 장영규

또 하나의 새로운 판소리가 탄생한다.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이 심청가를 재해석한 ‘피-避-P project’(8월13~17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다. 비빙은 영화 ‘놈놈놈’ ‘타짜’ ‘황해’ ‘도둑들’ 등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작곡가 장영규(46)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가야금·피리·해금·타악·소리 등 국악 연주자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형식을 모색해온 그룹. 불교음악 프로젝트 ‘이(理)와 사(事)’(2008)를 시작으로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이면공작’(2009), 궁중음악 프로젝트 ‘첩첩’(2011)에 이은 네 번째 실험이 이번 판소리 프로젝트다.

흔히 말하는 ‘창작 판소리’의 하나지만 서사와 반주, 무대장치에 새 옷을 입히는 수준이 아니다. 기존 심청가의 음악적 구조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본격적인 작업이다. 장씨는 판소리의 문법을 ‘다 버렸다’고 표현했다.

“요즘 창작 판소리가 많은데, 저흰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했어요. 남들이 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건 비빙이 할 일이 아니니까요. 또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걸 찾다 보니 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시작은 ‘새로운 판소리는 가능한가’라는 물음이었다. 창작 판소리 공연들이 이야기만 다를 뿐 다섯 바탕의 ‘소리길’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새로운’ 판소리라면 핵심이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창작 판소리가 판소리의 구조와 형식을 건드리지 않고 겉옷만 갈아입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지 않을까요. 정말 새롭다 말하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뒤집어 봐야하지 않나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집어넣은 건 없어요. 노래를 해체해 순서를 바꾸고 길이를 조절해 다시 부릅니다. 전통이 수십 년 몸에 밴 사람들에게서 나온 거라 아무리 뒤섞어도 다 그들 것이지만, 제가 만지는 과정에서 새로움이 나타나는 것이죠.”

비빙의 소리꾼 이승희는 판소리만들기 ‘자’ 소속으로 이자람의 ‘사천가’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장씨도 이자람밴드 음반을 프로듀스하는 등 이자람과 개인적 친분이 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한단다. “자람씨 작업은 국악계에 꼭 필요한 작업이죠. 저는 그저 다른 방법을 찾고 있어요. 자람씨는 ‘어떻게 만드나 두고 보겠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잘 돼가냐’고 묻는데 무섭던데요(웃음).”

2013 비빙콘서트 중에서
이번 공연은 완결된 서사를 갖춘 무대는 아니다. 심청이 집을 떠나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직전까지의 대목에 집중했다. 이승희를 포함한 소리꾼 3명이 심청과 심봉사, 귀신 역할을 나눠 맡는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순간까지의 심각한 장면인 만큼 판소리 특유의 유머와 익살은 없고, 굳이 따지자면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란다. 흔히 ‘심청가’하면 떠올리는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 아니라 엉뚱한 대목을 택한 이유는 음악적으로 흥미롭게 발전시켜 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서사보다는 음악적 실험이 먼저였어요. 전체 서사를 하기 위해서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어요. 대중적이지는 않겠죠. 비빙은 대중적 작업을 하는 팀이 아니에요. 전통의 여러 부분들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판소리의 무엇을 바꿔볼 건가 고민한 겁니다.”

그는 비빙의 작업이 ‘전통의 현대화’와는 상관없다고 못 박는다. 다양한 월드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나가고 있지만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에도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음악이 국악조차 아니란다.

“‘현대화’란 어떤 제안을 하는 일 아닌가요. 제 작업이 다른 이들도 같이 가야될 길을 여는 작업은 절대 아니에요. 여러갈래 길 중에 아무도 안 간 길을 하나씩 건드려 보는 작업일 뿐이죠. 작곡방식도 음을 쓰는 방식이 전혀 국악과 상관없는 서양음악 방식인데, 단지 국악기를 썼다고 국악은 아니죠.”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프로젝트’의 멤버이자 영화·무용·연극 장르를 넘나들며 가장 잘 나가는 음악감독이지만, 그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다. 대학시절 취미로 밴드를 하다 사촌 누나의 소개로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공연에 참여하면서 음악을 직업 삼게 됐다. 역시 안은미의 ‘심포카 바리’ 공연을 위해 모인 사람들끼리 뭔가 함께 해보고자 ‘비빙’을 결성했고, 멤버들이 다 국악기 연주자였을 뿐이란다. “국악 전공이 아닌 제가 국악 연주자들과 함께할 길을 찾다가 전통을 공부하면서 실험을 이어가자고 방향을 잡게 됐죠. 국악을 어떻게 해보자는 거창한 뜻은 없어요. 그저 이들과 할 수 있는 일을 재밌게, 기왕이면 좋은 작업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국악을 재료로 전위적인 작업을 하는 목적이 ‘남들 하는 걸 하기 싫어서’라고 말할 정도로 대중성과는 담을 쌓았지만, 국내에 설 자리가 없고 외국에서도 일회성 페스티벌 행사 위주로 초청받는 현실에 대한 고민은 있다. 진정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길을 찾는다는 얘기다.

“국내에선 우리가 기획하지 않는 이상 불러주는 곳이 없어요. 밝고 신나는 음악이 아니라 행사성 공연엔 별로 어울리지 않고요. 해외 페스티벌에 가면 외국인들은 좋아하죠. 하지만 그들은 즐기는 게 생활이고, 뭐가 와도 보는 관객들이에요. 반응 좋다고 또 부르지는 않죠. 관객들 위해서 계속 다른 걸 부르니까. 그런 과정에 끼기보다는 음악으로 승부하고 싶어요. 정말 좋은 음악, 즐길만한 음악이라서 찾아오는…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으로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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