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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예술을 낳고 예술은 명품을 낳았다

중앙선데이 2014.08.09 01:47 387호 16면 지면보기
1 설치디자인 “The Gate” 를 통과하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컨셉 워치 IDone과 IDtwo. 까르띠에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상징물이다. © TOKUJIN YOSHIOKA INC
2 까르티에 타임 아트 전시가 열리고 있는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만남, 손목시계. 정확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매력은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매니어들을 열광시킨다. 그럼 최초의 손목시계는 어떤 모양이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앞으론 어떻게 변해갈까?

상하이 ‘까르띠에 타임 아트-열정의 기술’ 전시회

지금 상하이에 가면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1904년 세계 최초로 기계식 손목시계를 만든 까르띠에가 상하이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에서 백여 년 시계 제조의 역사와 현재, 미래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Cartier Time Art Exhibition, 7월 19일~10월 12일).

2011년 스위스 취리히 벨레리베 뮤지엄의 월드 프리미어를 시작으로 2012년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에 이어 중-불 수교 50주년 기념으로 상하이에 상륙한 월드 투어 전시다. 지난 7월 18일 밤 VIP 프리뷰 행사에는 실비 베르만 주중 프랑스대사, 영화배우 류더화 등 유명 인사와 취재진 1000여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3, 4 1880년에 제작된 옐로우 골드 워치-브로치를 시작으로 200여개의 역사적 걸작품들이 선보여졌다.
2010년 상하이 세계 엑스포 때 문을 연 당대예술박물관은 1897년 지어진 발전소 건물을 개조한 초대형 전시공간이다. 우뚝 솟은 165m 굴뚝이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산업화와 근대화를 상징하는 이 공간에서 정확히 같은 시대를 풍미한 까르띠에 컬렉션을 펼쳐보인다는 것부터 흥미로워 보였다.

타임아트 전시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도쿠진 요시오카(吉岡徳仁)의 아트 디렉팅으로 선보이고 있다. 요시오카는 에르메스, 아우디, 스와로브스키 등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며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작가. 수만 개 빨대로 거대한 태풍을 일으킨 ‘토네이도’, 남프랑스 로제르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받은 감동을 오직 크리스털 프리즘으로 표현한 ‘레인보우 처치’ 등 사물의 형상 너머에 깃든 영혼을 개념적으로 표상해 왔다.

전시는 1880년대 제작된 회중시계의 일종인 ‘옐로우 골드 워치-브로치’로 시작해 최첨단 컨셉트 워치 ‘IDone과 IDtwo’로 끝난다. 초기 빈티지 모델부터 컨템포러리 디자인에 이르는 손목시계와 탁상시계 컬렉션 200여 점을 3개의 섹션에서 볼 수 있다.

5 Large “Portique” mystery clock(1923) N.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6 Mystery clock with single axle(1922) N.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7‘Chimera’ Mystery Clock(1926) N.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r 8 Screen Mystery Clock(1923) N.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9 Mystery clock with ‘Deity’(1931) N.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100년이 흘러도 낯설지 않은 디자인
입구로 들어서면 고대 유물 전시관 같은 느낌의 어둑한 조명 아래 유리 부스에 고전적인 방식으로 1910~20년대 역사적인 초기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1911년 상용화된 최초의 손목시계 ‘산토스-뒤몽’과 1920년대 이미 멀티플 컴플리케이션을 갖춘 포켓 워치 등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손목시계 컬렉션과는 별도로 전시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것이 탁상시계인 미스터리 클락. 산토스, 탱크 등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 속에 정확한 기술을 추구해 온 손목 시계와는 대조적으로 까르띠에의 예술성을 키워 온 것이 바로 ‘미스터리 클락’의 역사다.

‘미스터리’라는 명칭은 시간을 가리키는 바늘이 무브먼트와 연결된 부분 없이 허공에 떠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1912년 ‘모델A’에서 시작된 이 마술 같은 기법은 시계 장인 모리스 쿠에가 유명 마술사 로베르-우댕의 추시계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바늘을 무브먼트에 직접 연결하지 않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달린 유리 디스크 두 개에 고정시켜 착시 효과를 이용한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기술로 예술적 감동을 유발하는 구조다. 1점 제작에 1년이 걸릴 정도로 귀한 미스터리 클락 17점은 이집트, 인도, 중국, 일본 등에서 영감을 얻은 동양적 모티브로 장식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까르띠에 창시자인 앙리 까르티에의 아들 삼형제가 당시 세계여행에서 경험한 감흥을 시계에 반영한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제작 공정과 함께 전시된, 최신 기술과 예술이 적용된 2000년대 신제품들도 초기 모델의 전통적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다. 2010년 제작된 ‘산토스-뒤몽 스켈레톤’은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혁신을 추구해온 까르띠에의 디자인 철학이 즉물적으로 제시된 예다. 매커니즘 내부를 드러내는 오픈워크 무브먼트라는 세련됨을 통해 최초의 손목시계 모델인 산토스-뒤몽 워치를 재해석하고 있다.

미스터리 클락을 손목시계에 적용한 ‘로통드 드 까르띠에 미스터리 더블 뚜르비옹’도 마찬가지다. ‘미스터리’ 기법은 1912년 최초의 미스터리 클락이 나온 지 101년만인 2013년 최초로 손목시계에 구현됐다. 미스터리 클락과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바늘이 기계 장치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손목시계는 까르띠에의 기술과 예술이 결코 둘이 아님을 주장하는 듯하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들은 시계 내부가 실물 뒤로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3D 영상과 함께 전시돼 역시 미스터리 클락의 개념을 잇고 있었다.

10 설치 디자인 “The Gate”. 도쿠진 요시오카 특유의 미학으로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강한 충격을 선사한다. ⓒ TOKUJIN YOSHIOKA INC 11, 12 컨셉워치 IDone과 IDtwo. 미스터리클락처럼 허공에 붕 떠 있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크리스털 원반 앞뒤로 고정되어 있다. 크리스털 원반에 관람객들의 모습이 왜곡되게 투영되어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 TOKUJIN YOSHIOKA INC
미래에서 타임머신 타고 온 듯한 IDone과 IDtwo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설치 디자인 ‘더 게이트(The Gate)’다. 도쿠진 요시오카 아트디렉팅의 진수가 집중된 것도 바로 이 구역이다. 어두운 조명을 벗어나 갑자기 대낮처럼 환한 공간으로 들어서면 천장에서 내려오는 국수 면발처럼 촘촘하고 가느다란 실 커튼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역사를 관통해 미래로 이어지는 까르띠에의 브랜드 정신을 마주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셈이다. 공기나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 속에 쉼없이 리듬을 부여하는 시간에 대한 은유랄까.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빛 줄기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 상태로 신비로운 장막을 헤쳐가다 보면 마침내 ‘타임아트’의 종착지에 도달한다.

대형 유리부스에 버티고 선 크리스털 원반 한가운데 무언가 둥실 떠 있다. 바싹 다가가 살펴보면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시계 두 개가 원반의 앞뒤로 고정되어 있다. 컨셉트 워치 ‘IDone’과 ‘IDtwo’다. ‘ID’란 ‘Innovation+Development’. 판매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모델이다. 2009년 개발된 최초의 컨셉시계 ‘IDone’에 이어 2012년 개발된 ‘IDtwo’는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해 무려 32일의 파워 리저브를 갖춘 역사상 첫 진공시계다.

몽환과 환각으로 포장된 첨단기술이랄까, 최고의 기술이 구현된 컨셉트 시계들이 마술 같은 디스플레이 안에서 예술이 돼버렸다. 100년 전 미스터리 클락에서 비롯된 ‘기술과 예술의 결합’에 대한 오마주에 다름 아니다. 요시오카는 “까르띠에는 끝없는 아름다움의 추구 속에서 시간을 창조하며, 장인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하모니가 시간을 예술로 제련한다. 그 독자적 아름다움은 긴 역사와 미래를 향한 아방가르드 정신이라는 두 극단의 결합에서 나온다”며 “물건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물리적 형태를 초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화려한 겉모양을 넘어서는 명품 브랜드의 정신은 도쿠진 요시오카의 투명한 크리스탈 속에서 형상 이면의 도도한 가치를 내뿜고 있었다.


상하이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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