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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 ‘명량’ …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있다

중앙선데이 2014.08.09 02:00 387호 21면 지면보기
자고 일어나면 세포분열 하듯 관객 수가 100만 명씩 늘어난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얘기다. 이대로라면 관객 1000만 명은 당연지사에, 1500만 명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쓸 거라는 게 업계의 우세한 관측이다.

컬쳐#: 1000만 관객 영화의 조건

아무리 온 국민이 1년에 4편씩 영화를 본다고는 해도 인구 5000만 명인 나라에서 1500만 명이 한 영화를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소위 ‘1000만 영화’는 전통적으로 ‘일간지 문화면에서 사회면으로 관련 기사가 옮겨가는 시점’에 탄생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개봉 8일 만에 800만 명을 넘긴 ‘명량’엔 이 같은 속설을 적용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2003년 ‘실미도’ 이후 ‘1000만 영화’가 나올 때마다 벌어지는 해묵은 논쟁도 되풀이된다.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이 볼 영화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일종의 작품성 논란인 셈인데, 가령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캐릭터를 비롯해 다수의 등장인물이 후반 61분에 집중된 해전 스펙터클을 위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쳤다, 마치 ‘관객들에게 내 속마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장군의 영이라도 내려진 듯 이순신의 내면이 입체적이지 못했다는 등의 비판이다.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명량’에 대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많이 볼 영화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이렇게까지 많이 볼 영화는 아닌데’라는 생각엔 그 영화가 ‘(사람들이 많이 볼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다’는 무의식적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런 전제는 ‘1000만 영화’에 몰리는 사람들은 남들이 많이 본다니까, 혹은 극장에서 그 영화만 상영하니까 (작품성에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영화를 고른 거라는 짐작으로 이어진다.

과연 그럴까. 마케팅 개념 중 ‘소비자 관여도’라는 게 있다. 구매 행위를 할 때 소비자가 얼마나 고민하느냐 하는 거다. 이에 따라 고관여 제품과 저관여 제품으로 나뉜다. 예컨대 BMW는 고관여 제품이고 모나미 153 볼펜은 저관여 제품이다. 관여도가 높다는 건 해당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티켓 한 장에 1만원이 안 되는 영화는? 당연히 저관여 제품일 것 같지만 문화예술 상품의 경우 동반되는 사전·사후 행위가 있기에 제품 가격만 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데이트하는 커플이 영화를 본다면 관람료 2만원, 커피 2잔에 1만원, 관람 후 식사 2만∼3만원이다. 도합 5만∼6만원에 평균 5시간이 소요되는 고관여 구매 행위인 영화를 아무 정보 없이 극장 가서 내키는 대로 볼 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다.”(원동연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 영화 ‘광해’ 제작자) 요컨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영화에는 이유가 없어 보여도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상당한 수준의 신중함이 구매 행위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실 ‘명량’엔 그 어떤 역대 흥행작보다 소비자의 관여도를 높일, 즉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많아보인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흠잡을 데 없는 ‘성웅’의 존재는 노년층에겐 향수의 대상이다. 청소년들에겐 역사교육 교재로 맞춤해 보인다. 게다가 ‘명량’은 우리가 이기는 얘기 아닌가. 그것도 해방 이후 한결같이 불편한 존재인 일본한테 말이다. ‘흥행의 가늠자’로 불리는 포털 사이트 평점이 개봉 후에도 8점 후반대를 유지하는 건 이런 심리를 이 영화가 61분의 스펙터클로 꿰뚫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이런 오해는 대개 하이 컨셉트 영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하이 컨셉트’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획영화를 뜻한다. ‘명량’은 20년 넘는 경력의 한 영화인이 “‘13척으로 330여 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만큼 (투자자를 설득하고 관객을 끌어들일) 강력한 한 줄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 대표적인 하이 컨셉트 영화다. 이런 영화는 단순하고 명쾌한 게 특징이자 미덕이다. 관객층 최대화를 위해 보편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휴머니즘과 애국심, 리더십, 진정성 등이다. 보편성에 기대다보면 아무래도 영화가 ‘엣지’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다보니 종종 작품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오인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작품성을 정의하는 잣대가 달라 받게 되는 오해일 뿐이다. 제대로 잘 만든 하이 컨셉트 영화가 작품성이 떨어지는데 흥행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대세가 이럴진대 포인트를 잘못 짚은 입씨름은 부질없는 일. 그보다는 극장가를 한 영화가 온통 점령해 다른 영화 보기가 당최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인지, 그게 바람직한 일인지를 따져묻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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