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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기도하듯 살아가야 할 이유

중앙선데이 2014.08.10 02:22 387호 27면 지면보기
몇 년만에 제주도에 갔다. 여행 기간 장맛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은 연일 습했다. 풀들도 지쳐 보였지만 산간에 가끔 구름이 지나다 뿌린 비 때문인지 그래도 넉넉한 바람이 살랑거렸다. 자연이고, 사람이고 적당한 온도와 비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바람·돌·여자, 여기에 비와 구름을 합쳐야 제주의 날씨라 하겠다. 삼다도(三多島)가 아니라 오다도(五多島)라 해야 할 듯싶다.

문득 생각해 본다. 구름은 어디서 만들어져 어디서 떠돌다 어디에 비를 내리는 걸까. 땅에서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여행에는 외로움과 비움의 향기가 함께한다. 인생 여행도 마찬가지다. 하얀 솜털처럼 고운 구름이 떠도는가 하면 어느새 비바람이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게 우리네 삶과 같지 않는가. 혼자 떠난 여행이 즐거운 것은 홀로 오롯하다는 점 때문일 게다. 일행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3년 전 이맘 때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암이 재발이라도 하면 이런 여행도 갈 수 없겠다 싶었다. 딸 아이의 대학 졸업도 겸해서였다. 우리 가족은 낯선 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묵은 밭 옥수수 긴 수염 열매처럼 힘이 없으면서도 맑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은 지금도 제주도 바람과 함께 기억에 생생하다. 바람 끝에도 가벼운 실타래처럼 마음은 흔들렸고, 뭐라도 아내에게 잘해줘야 할 것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함덕에 갔다. 맑고 푸른 녹색의 바닷가였다. 3년 전 억새가 손사래치던 돌담가엔 어느새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삶은 깊고 끝없는 실타래던가. 돌아오는 길, 제주에 머물 때 우리를 챙겨줬던 선배 교무가 공항 주차장에서 조그마한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런 거 뭐하러 주세요”라고 했지만 한사코 받으란다. 집에 와서 열어 보니 몇 가지 해산물이 담겨 있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조그마한 정(情)의 밭을 일궈가며 사는구나 싶었다. 훈훈한 마음에, 온 가족이 모래밭에 만들었던 조그마한 두꺼비집을 떠올리며 마음의 여행도 마무리했다.

스토아학파인 에픽테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것을 잃게 되면 “잃었다”고 하지 말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하라고. 자식이 죽었는가? 그 아이는 좀 일찍 먼 길을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가? 그 또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재산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성직자들이 사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함께 나누는 일이고, 또 하나는 맑은 정리를 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거울이 돼야 한다. 이것이 항상 음미하는 나의 상념 중 하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매천야록』을 읽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자긍과 자존이 허물어진 나라에서 민초들이 겪어야 했을 영혼의 가난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남이야, 나라 살림이야 어찌됐든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자들의 얘기가 실려 있었다. 서로 끌어안지 못한 민족에겐 늘 고통이 따른다. 기도하듯 살아가는 것, 그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고 나누는 삶이란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가까운 벗이 이런 글을 보내왔다. “기도의 목적은 남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복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을 받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정은광 교무 dmsehf44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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