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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칼럼] 입국 금지 → 에볼라 차단은 착각

중앙선데이 2014.08.10 02:37 387호 30면 지면보기
1999년 여름, 미국 뉴욕에선 수많은 까마귀들이 죽은 채 발견됐다. 몇 달 후 뉴욕 시민들이 원인 불명의 뇌염에 걸려 숨지기 시작했다. 뉴욕에 뇌염을 유행시킨 바이러스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2012년엔 미국·캐나다 등 북미에서만 120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다. 그해 10월엔 우리나라에서도 첫 환자가 확인됐다.

낙타가 옮기는 병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요즘 방역전문가들에겐 골칫거리다. 올 5월까지 19개국에서 621명이 감염돼 188명이 숨졌다(치사율 약 30%). 우리와 왕래가 잦아진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서 유행해 병명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다.

2002년 11월부터 중국 광동을 중심으로 발생한 뒤 세계에 확산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악몽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세 종류의 바이러스와 최근 세계적인 공중보건 이슈로 떠오른 에볼라 바이러스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넷 모두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진 감염병이다. 효과적인 예방백신이 없고, 치사율이 높은(특히 에볼라) 것도 닮았다.

그러나 우리의 대처 방식은 차이가 난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유행한다고 해 미국·캐나다인을, 코로나 바이러스를 걸어 중동인을, SARS의 발원지란 이유로 중국인을 못 들어오게 하자는 얘기는 없었다. 그런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국제행사에 참석하려는 아프리카인들의 입국을 문제 삼고 있다. 왜 유독 그들인가. 혹시 뭔가 차별의식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닐까. 올 가을 한국에서 유행성 출혈열(한국형 출혈열)이 유행한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막는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어떤 나라에 구제역 등 가축 질병이 돈다면 그 나라에서 생산된 고기의 수입을 거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의 병은 다르다. 감염병 발생 국가의 국민이 항공기·선박 등을 이용해 해외로 나갈 권리를 완전 차단한 사례는 없다. 기본적인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아프리카인의 입국을 거부한다고 해서 에볼라를 100%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 대상의 검역엔 늘 ‘구멍’이 있다. 우리보다 검역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 에볼라 감염자가 먼저 발생하더라도 역학 전문가들에겐 ‘놀랄 일’이 아니다. 공항·항만 검역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말은 물론 아니지만, 검역의 성패는 어느 정도 ‘운수 소관’인 측면도 있다.

따라서 ‘에볼라는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 철저하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옳다. 우선 의료진에 대한 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에볼라 감염이 의심되면 의사들이 먼저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선 이미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에볼라 감염자를 다룰 의사들을 위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소량이라도 확보해 놓아야 한다(아직 개발돼 있지 않지만).

일단 아프리카인의 입국은 허용하되 수시로 “열이 있습니까? 몇 시간 내로 응답하지 않으면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와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입국자-검역 당국 간 핫라인도 필요하다.

만에 하나 ‘에볼라의 한국 상륙’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더라도 국민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에볼라를 바로 알리는 교육이 꼭 이뤄져야 한다. 많은 국민이 에볼라라고 하면 영화 ‘아웃브레이크(Outbreak)’를 떠올린다. 영화 속 바이러스는 ‘모타바 바이러스’다. 개봉 당시 에볼라가 유행하는 바람에 에볼라를 다룬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화에선 바이러스가 공기로 전파되지만 에볼라는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옮겨진다. 공기를 통한 감염보다는 감염력이 훨씬 약하다.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감염 경로가 공기로 바뀌는 일도 아직 없다. 대비책은 제대로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 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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