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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경제는 심리더라

중앙선데이 2014.08.10 02:45 387호 31면 지면보기
지난 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취재를 위해 도쿄에 갔다가 백화점에 들렀다. 발디딜 틈없는 의류 매장에서 유독 신바람이 난 직원이 다가왔다. 그는 “외국인은 소비세 환급이 가능하다”며 소비세 얘기를 늘어놨다.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렸을 때 일본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는 둥, 소비세 인상 하루 전날 백화점과 마트에 손님이 엄청 몰렸다는 둥…. “그래서 장사가 잘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소비세 인상 전보다 매출이 더 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일본 전체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크레디트스위스(CS)에 따르면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의 소비 침체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 전월 대비 실질 소비지출은 4월에 13.3%, 5월엔 3.1% 감소한 다음 6월 들어 1.5% 증가했으나 회복세는 미약했다. 전월 대비 실질 소매판매 역시 4월에 18.8% 감소한 이후 5월 3.9% 증가했으나 6월엔 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다면 매장 직원이 신바람이 난 이유는 뭘까. 그가 일하는 매장만 매출이 올랐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큰 것 같다. 무기력했던 일본의 역대 정권들과 달리 아베 신조 총리는 돈을 턱턱 풀고 엔화가치를 낮추며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경제주체들이 ‘이젠 뭔가 바뀌는구나’고 실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띄우자 지지율도 올랐다.

혹독한 불황을 겪던 일본에 비해 한국 경제의 여건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위험을 무릅쓰고 소비세를 인상해야 할 정도로 재정 건전성이 나쁜 것도 아니다. 비정상적인 금융정책인 양적완화를 꺼내들 단계도 아니다. 통상적인 금리 조절로 경기흐름을 조절할 여지가 남아 있다. 금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만큼은 일본이 더 낫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도쿄와 서울의 거리에서 와닿는 민간소비의 체감온도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베노믹스는 심리를 띄우는 데엔 일단 성공했다. 그에 비하면 최경환 경제팀의 부양책은 이제부터다.

일본 역시 어렵사리 띄운 심리를 실물로 굳히기에는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근본적인 처방, 즉 구조개혁에서 경기대책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심리학자로선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2002년)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인간이 직관과 숙고의 ‘투 트랙’ 결정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놀랍게도 수많은 결정들이 직관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뤄진다고 봤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최경환 경제팀이 직관에 많이 의존했다면, 앞으론 경제 전반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숙고에 들어가야 할 차례다.


박성우 경제부문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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